성경이야기-펌

[스크랩] 사도 도마의 이야기 (요약)

쟝리 2011. 11. 4. 01:15

 

사도 도마의 이야기 (요약)

 

머리말

도마와 도마 복음서. 기독교의 역사는 예수님이 자기를 종의 형체로까지 낮추시고 이 세상에 오셔서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하신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빌 2:5)을 계승하여 땅 끝까지 이르러 “그리스도의 증인”(행1:8)이 되신 사도들과 그들을 따르는 모든 성실한 그리스도인들에 의하여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사도 도마는 역사에 화려하게 나타난 다른 사도들처럼 많이 알려지게 사역하신 사도는 못되었을지라도, 분명히 그는 기독교 역사 흐름의 크고 요긴한 부분을 차지했던 분으로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의심쟁이 도마’라는 별명이 붙은 도마를 저자는 오히려 모든 것을 ‘확실히 하고 믿겠다’는 실증주의자로 보아왔습니다.

 

제1장 자칭 도마파 그리스도인

나는 성경을 보면서 사도 도마는 의심쟁이가 아니라, 오히려 모든 것을 확실하게 알고 믿으려고 했던 실증주의자임을 확신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자신의 눈으로 보고 자신의 손으로 만져보고는, 이 생명이 사망을 삼켜버리는(고전 15:54) 위대한 역사적인 현실 앞에서 예수님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요 20:28)이시라고 신앙고백을 하고 평생을 순교하기 까지 충성을 다했습니다. 사도 도마의 영적인 성숙한 성장 과정이 현대인들의 영적인 성숙한 성장의 과정과 너무나 비슷하기 때문에 나는 사도 도마는 회의심 많은 현대인들의 믿음의 조상이라고도 설명하고 싶었다.

 

제2장 도마, 예수님의 사도

모든 제자들은 실명을 사용하였는데, 사도 도마만은 일반명사로 “쌍둥이”라는 뜻의 히브리어의 “도마”라든가, 헬라어의 “디두모”(요 11:16, 20:24, 21:2)를 사용했다. 도마의 원래 이름은 “유다”였기 때문에 고대문서들에는 “유다 도마”로 표현되어 있다. 사도 도마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의 죽으심과 그 다음의 세계에 대하여 말씀하였을 때에도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요 14:5)라고 솔직하게 자신의 주님의 말씀에 대한 무지를 드러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천국복음 사역을 계승 할 사도들의 선출을 위하여 밤이 새도록 철야기도로 준비하셨다. 철야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의 뜻에 합의하고 천국복음 선포의 자격이 있는 사람들을 사도로 택하셨다.

사도라는 낱말은 어떤 특별한 목적, 특히 예수님의 지상에서의 말씀 선포와 치유사역을 위하여 예수님의 권위를 대신하여 사역하는 특별한 임무를 맡은 사자를 말한다. 사도로서의 자격을 말한다면 세속적인 면에서의 학력이나 기술적인 능력이나 세련된 인격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예수님이 구세주로 오신 것을 확신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을 사도로 택하신 것을 볼 수가 있다. 이들은 너무 순수하였기 때문에 예수님의 교훈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진리를 위하여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자세를 가졌기 때문에, 이스라엘 본토는 물론 낯선 아시아와 유럽과 아프리카 지역에까지 이르러 문화와 풍습이 다르고, 심지어는 종교가 다른 곳에서도 담대히 선교를 할 수가 있었다.

기복종교적인 기도와 복음적인 기도의 차이점을 살펴보면, 복음적인 기도는 인류역사가 하나님의 섭리적인 뜻이 성취되게 하시는 것을 알기 때문에, 먼저 자신을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넘치는 감사의 기도가 되어야 하며, 그 감사에 보답하기 위한 헌신의 다짐이 있어야 하며, 그 헌신의 다짐을 실천하는데 부족한 것을 구하는 기도가 되어야 한다.

복음서에 나타나는 사도로서의 직무는 첫째로, 사도로서의 기본적인 훈련을 받게 하는 일이다. 둘째로, 인류구원의 복음을 세계만방에 선포하는 일이다. 셋째로, 능력된 역사를 하게 하심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전수하신 믿음으로 인한 치유의 능력을 부여하여 복음선포와 더불어 심령의 고통과 육신의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그 고통에서 해방시키는 권능도 주신 것이다.

디두모라 하는 도마. 사도 도마의 기사가 4복음서 중에 요한복음에만 짧게 세곳에 기록되어 있다. 도마는 의심쟁이가 아니라 모든 것을 확실하게 알려고 하는 실증주의자라고 말하는 것이 바람직한 해석일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체험한 사도 도마는 실증주의자답게 주님에 대한 신앙의 확신으로 이스라엘 주변 국가들로부터 멀리 인도와 그 넘어 까지도 선교하였고, 마침내 순교하기가지 충성을 다한 것을 볼 수가 있다.

 

제3장 성경에 나타난 사도 도마의 인품

실증주의자 사도 도마는 마음 중심으로부터 나오는 신앙고백을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 20:28) 라고 고백하였다. 체험적 신앙을 통하여 변화되어 헌신하게 되는 3단계로 첫째 단계는 묻고, 보고, 만지고 느껴지고, 믿어지는 단계. 둘째 단계는 체험하고 확실한 신앙적인 근거를 가지고서 신앙 고백을 하는 단계. (사도 도마와 같이 살아계신 주님을 체험하는 것이 신앙의 절정) 셋째 단계는 주님과의 만남이 살아있는 신앙이 되어서 모든 문제들을 뛰어 넘어서 죽기까지 헌신, 충성을 하는 단계이다. 사도 도마는 부활하신 주님과의 만남이 살아있는 신앙이 되어 지금부터 약 2천년전의 모든 불편한 문제들을 뛰어넘고, 생명을 바치면서까지 오스로헨 왕국의 에뎃사와 지금의 이란, 파키스탄, 북부인도까지 선교하시다가 순교를 당하도록 충성하였다.

 

제6장 사도 도마의 조기 외국 선교

사도 도마의 활동시기에 당시 실크로드 각지와 특히 솔로몬왕 시대부터 이스라엘과 무역이 활발하였던 인도에 크고 작은 유대인들의 생활공동체가 있었다는 것은 유대인들 서이에는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사도 도마는 인도로 향해가면서 이르는 곳마다 유대인 동포들에게 “우리들이 기다리던 메시아(그리스도)가 오셨다.”고 증거 하였고, 이방인들에게도 전도하였다. 그런 수고의 결과로 먼저 많은 유대인들의 개종자를 얻게 되었다.

“도마행전”에 의하면 모든 사도들이 함께 모였을 때, 전 세께 지역들을 분할하여 각자가 제비뽑아서 맡은 지역에 주님께서 그들을 파송하신 지역으로 믿고 가기로 하였다. 그리고 제비뽑기에서 쌍둥이라고 불리우는 유다 도마에게 인도가 배당되었다. 도마는 당황하여 낯선 인도라는 곳에 가기를 싫어하였지만, 주님의 강권적인 역사가 도마로 하여금 절대 자유로울 수 없는 노예의 신분으로 인도에 선교여행을 떠나게 하였다. 원래 그는 다양한 나무와 돌을 다루는 기능인으로서 인도의 부름을 받게 되었다. 사도 도마가 상륙한 안드라폴리스는 헬라·로마시대의 낡은 항구였으며, 지금 이 항구는 인더스강의 상업도시인 발바리콘의 북쪽에 있다. 사도가 인도의 여러 고을을 들러서 성령의 권능으로 말씀을 선포한다는 소문이 들렸고, 많은 사람들도 따라서 그의 하는 일에 동참하였다.

 

제7장 인도에의 길

사도 도마의 인도 상륙. 인도 서남부의 마라바 지역은 산악지대이며, 인도의 동서를 왕래하는 무역과 무역 중계지의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다양한 인종들과 문화들의 박물관”이라고 평할 정도로, 여러 종족들과 그들의 각기 독특한 문화들이 혼합되어 있었다. 그들이 믿는 중요 종교는 힌두교, 불교, 그리고 기원전 6세기 경에 인도에서 발생하여 성자와 동물을 숭배하는 쟈이나교 등이 있는데, 이들이 그 지역에서는 이미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유럽과 인도의 자료들에 의하면 기독교의 첫 세기는 로마 제국이 남인도와의 무역교류의 황금기였다고 한다. 사도 도마도 몬순계절풍을 타고 약 40일 정도의 여행으로 인도의 서남부지방에 도착하였을 것임을 확인할 수가 있다.

사도 도마가 상륙한 지금의 코친 지역. 인도에서 사도 도마의 중요한 사역은 유대인이나 이방인들을 회개와 개종시키는 일이였다. 성령 충만하여 외치고 전달하는 메시지 속에 사람들의 심령을 움직이게 하는 능력의 역사와 병자들을 치유하는 초자연적인 치유의 능력과 귀신의 정체를 밝히고 그 귀신들을 추방하는 능력 등 이었다. 먼저는 주로 유대인들의 정착촌에 교회들을 세웠다.

사도 도마가 선포한 복음의 내용을 7가지로 요약하면, 첫째로, 인도에서 서쪽 나라에 그리스도라 불리우는 구세주가 탄생하였다는 것을 선포하였다. 둘째로, 그리스도는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빛의 구세주이심을 선포하였다. 셋째로,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며, 이런 죄인의 불신앙의 생활 속에서는 자신의 힘으로는 결코 구원받을 수 없음을 증거하였다. 넷째로, 그리스도는 참으로 살아계신 하나님께로부터 인류구원 사역을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다고 증거하였다. 다섯째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들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우리의 죄의 댓가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음으로 그 이름을 믿는 자들은 누구나 구원을 받는다고 선포하였다. 여섯째로, 죄인이 구원받는 것은 믿음만으로 구원받게 된다고 선포하였다.

일곱째로, 사도 도마는 믿음으로 사는 생활은 곧 성화하는 성결의 생활임을 강조하여 말씀하였다. 사도 도마는 윤리나 도덕이 구원의 기준은 될 수 없지만, 변화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자연스럽게 변화된 심령들이 성장하여 성결의 생활이 되어야 됨을 말씀한 것이다. 사도 도마가 매 토요일마다 유대인들에게 구약성경을 읽고 강해하는데 사용하였던 코둔가루 회당의 바울랍비를 포함하여 40명의 유대인들도 있었다. 여러 가지 이적중 가장 특이할 만한 이적은 사도의 범죄를 뒤집어 씌워 기독교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죽게 한 어떤 이발사의 아들의 생명을 소생시키는 일이었다. 그곳에서 1,600명을 기독교로 개종시켰다. 그리고 사도는 그곳에 십자가를 세워 교회를 설립하고 그곳을 떠났다.

 

제8장 도마행전에서의 인도 선교여행

도마행전은 2세기와 3세기 사이 저술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도마행전의 원작은 고대 시리아어로 기록되었으며, 학자들의 연구로는 도마복음서의 신앙과 사상이 요한복음에 가깝고, 사도 바울의 서신과도 공통된 점들이 많다고 주장한다. 고대 시리아어로 된 이 복음서는 라틴어와 곱딕어와 아르메니아어판으로 나와서 그리스인들 사이에서 널리 읽혀졌는데, 사도 도마는 결코 육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긍정하고 있음을 도마행전 전체에서 찾아 볼 수가 있다. 성례전은 대체로 기름 바름과 침수례와 성찬식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고 본다. 도마행전이 전체로 171장으로 기록되었는데, 두 부분으로 1장-61장은 북부인도를 포함한 빠르띠아 선교이야기, 62장-171장은 주후 50년의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의 회의 이후의 제2차 선교여행으로 남인도에서의 활동을 기록했다.

주님께서 사도 도마에게 나타나셔서 “도마여, 두려워 말라. 내 은혜가 그대와 함께 할 터이니 그대는 인도에 가서 말씀을 선포하라.”고 말씀하셨다. 사도는 믿음을 고백한 사람들에게 은그릇에서 기름을 취하여 주님의 이름으로 이들 영혼의 죄사하심으로 머리에 바르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물속에 넣고 침수례를 행하였다. 사도 도마의 활동 당시 사회는 부족사회요, 절대 왕권 통치 시대였기 때문에 자신의 결정권이 전혀 없는 백성들에 대한 전도는 어려웠고, 주로 상류 계층에게 전도하는 것이 일반적인 선교사역의 방법이었다.

도마행전에도 전반부는 북부인도 지역의 군다포로스 왕국에서의 당시 지배계급 사람들과의 관계와 사역이 언급되었고, 후반부는 남인도 지역에서의 마즈다이왕 가족과의 전도 이야기가 주로 기록되어 있다.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기본적인 믿음의 진리를 수용하고, 그 믿음의 수용으로 변화된 증거로서의 성결을 강조하였고, 믿음의 결과로 확실한 증거를 인쳐 주기 위하여 기름바름과 침수례와 성찬식의 성례전을 집행하였고, 이런 새로운 그리스도인들을 통한 가족, 친구들을 전도하여서 복음사역을 확장한 것을 볼 수가 있다.

 

제9장 동아시아 선교여행

사도 도마의 인도 선교는 현재의 지역적인 의미보다도 당시 사람들이 말하는 인도나 중국을 말할 때에 광범위하게 더 동쪽까지 포함하여 말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으며, 사도 도마가 순교하기 직전의 중국여행을 살펴보면, 최소한 한반도에 제1차 선교여행 시와 제2차 선교여행 시에 한번씩 들렀던 것으로 추리해 볼 수가 있다. (자신의 석상?)

 

제10장 사도 도마의 선종

아드야강 강뚝 언덕에 굴이 있는데, 예수님께서 관습대로 기도를 하셨던 것처럼 여러 시간에 걸쳐서 조용히 기도할 수 장소로 숨어서 기도하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바위틈 사이에 샘물이 있고, 그 내부에는 사도 도마가 쌓은 작은 제단이 있고 양쪽 팔을 올려놓고 기도하였다는 작은 탁자 같은 바위가 있었다. 미라풀의 왕, 라자 마하데반에게 핍박을 받아 순교당할 때까지 도마가 숨어 있었던 굴이다.

 

제11장 도마의 설교집

* 예수님을 전합시다 (도마행전 제7행전 66장-67장에 수록)

1)믿음 위에 굳건히 서시오

2)주님의 하시는 역사

3)예수님께 희망을 가지시오

* 불법의 예언자를 경계하라

1)예수님을 믿으시오

2)불법의 예언자를 경계하라

3)주님께 영광을 돌리시오

사도 도마의 축귀사역을 통하여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하나님께 있음을 증명해 주었다.

 

제12장 사도 도마의 전승과 그 이해

도마복음서가 1945년에 나그 하마디에서 발견되었고, 이 복음서에는 잠언들과 비유들과 예수님의 말씀들과 초대교회 당시에 유행하였던 사상적인 배경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도마복음서에는 구원은 “살아계신 예수님”의 말씀과 만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임으로 예수님과 완전히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도마복음서의 중요한 의제는 예수님을 지혜의 스승으로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1)예수님과 사도 도마의 닮은점들

1.어부였던 사도 도마가 목수라고 말함으로 그는 예수님과 같은 직업을 가지고 일하였다.

2.사도 도마도 예수님처럼 하늘의 왕궁을 준비하였다고 하였다.

3.우리 주님께서 은 30에 팔렸는데, 사도 도마는 은20에 팔렸다.

4.사도 도마는 병자들과 반신불수들과 미친 사람들을 치유하였다.

5.사도 도마는 악령을 축출하였다.

6.사도 도마는 죽은 자를 살렸다.

7.죽게 된 것처럼 보였던 두 여인들을 회복시킨 다음에 사도 도마는 그들의 종들에게 그들을 위하여 양식을 주라고 명하였다.

8.사도 도마의 주변에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모였음으로 사람들이 서로 짓밟는 일이 생겼다.

9.사도 도마는 예수님처럼 나귀를 타셨다.

10.사도 도마가 마즈다이왕에 의하여 끌려 나가려고 할 때에, 그 신하의 한 사람이 “예수가 그를 나의 손에서 건져주는가를 지켜보자”고 말하였다.

11.사도 도마는 마즈다이왕의 심문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빌라도 총독 앞에서 침묵하였던 것처럼 그도 대답하지 않았다.

12.사도 도마는 마지막에 마즈다이왕에서 “왕은 왕이 생각하는 것처럼 나를 다스릴 권한이 없습니다.”라고 말하였다.

13. 사도 도마는 채찍을 맞으셨다.

14.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기 위하여 군인들과 한 사람의 백부장에게 넘겨져서, 그것이 헬라어 성경에 기록되었는데, 사도 도마는 네 병사들과 한 사람의 장교의 손에 넘겨졌다. 고대 시리아어 교본에 그 숫자를 분명히 밝히지 않았다.

15.사도 도마는 창에 찔려서 운명하였다.

16.그의 육체는 세마포에 싸였다.

17.사도 도마는 예수님께서 아리마데 부자 요셉의 바위 무덤에 묻힌 것처럼 왕들의 무덤에 묻혔다.

18.사도 도마는 예수님께서 몇 번씩이나 그의 제자들에 나타나신 것처럼, 순교당한 후에 그의 추종자들에게 나타나셨다.

도마행전을 바르게 이해 하는데는 첫째로, 사도 도마는 에뎃사를 중심으로 시작한 고대 시리아어를 사용하는 지역의 동교회의 최고 대표자로서 대주교로 인정받았으며, 당시에는 사실상 예루살렘 동쪽에 전파된 기독교 세계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던 것을 알 수 가 있다. 둘째로, 도마행전의 저자는 사도도마의 이야기를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생애와 비슷하게 표현함으로 대단히 관심 있게 만들었다. 우리는 저자가 그들이 존경하는 사도 도마를 그의 주님이 되시며 스승되시는 예수님과 가장 가깝게 표현하려는데 집중하였던 것을 알 수가 있다. 셋째로, 인도에 관한 이야기인데, 저자는 도마의 인도 선교사역을 자신이 수집한 자료들에 의하여 알고는 있었지만 인도에 대한 자세한 지리나 정치적인 배경의 역사를 잘 알지 못하였던 것 같다. 그러나 저자는 분명히 자기들이 존경하는 사도 도마가 그 먼 땅에서 놀랍게 사도의 직분을 다한 것을 알고 있는 것 같다. 저자는 사도 도마가 예수님의 가신 길을 훌륭하게 따라간 선교사로서 표현하고저 한 것 같다. 도마행전에 의하면 사도 도마는 주님의 강권적인 역사로 지상명령에 순종하여 자신의 고집을 꺾고 인도 사역을 위하여 떠났고, 그의 충성스러운 신앙이 자신의 선교사역에서 직면하였던 모든 난관들을 극복하고 복음의 씨를 낯선 인도땅에 뿌리게 되었던 것이다.

 

[맺는말]

인도 갠지스강 주변에서 발굴된 몇 개의 동전들이 사도 도마의 북인도 선교의 확실한 증거를 제시해 주었고, 중국의 당나라 시대에 세웠다가 땅에 파묻혀 있었던 비석인 대진경교유행중국비 하나의 발굴이 중세시대의 아시아 기독교 역사를 다시 쓰도록 변경하였고, 그때의 문화가 아시아와 전세계에 대단한 영향을 끼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한반도 남부의 가야지역에서 무엇을 하였을까를 한국교회가 밝혀야 할 사명이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땅 끝까지”의 선교를 실현한 역사를 자랑스럽게 세계에 선포하는 사역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몫으로 남겨 두셨습니다. 사도 도마처럼 모든 것을 분명히 알고 믿어야 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한반도에서의 하나님의 사역의 첫째물결은 초대 교회시대의 사도 도마가 인도 선교여행에서 우랄 알타이 계열의 유대인들의 후손들을 찾아 한반도에 까지 오게 되어 기독교 신앙과 문화의 흔적을 남기게 하였습니다. 특히 우리들의 민속문화와 종교의식에 구약성경과 유사한 것이 너무나 많은 것을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둘째물결은 중세 교회시대에 경교의 선교사 아로펜 일행이 AD 635년에 중국의 당나라의 태종 황제께 선교하여 예수님을 구주로 믿게 하여 당나라의 수도인 지금의 서안이 시리아계의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인 경교가 기독교의 복음과 문화를 전파하여 중국과 중국 주변의 나라들인 조선반도나 일본 열도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우리나라나 일본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당나라에 가서 종교, 건축, 의술, 약재 등 모든 분야에서 수학하고 돌아와서 우리들의 민속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셋째 물결은 근세 교회시대인 2세기 전부터 밀려들어온 카토릭 선교와 1세기 전부터 토마스 선교사의 대동강변에서의 순교 등으로 밀려들어온 개신교의 선교와 현대 의료사업의 시작으로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오늘의 한국교회를 이룩하게 하였습니다.

 

 

 

출처 : 호크마
글쓴이 : 호크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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