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링컨 대통령의 꿈
미국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이
하루는 자신의 절친한 친구 워드 힐 라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것을 잘 듣게.”
그는 천천히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습니다.
“성경에 보면 꿈에 대한 이야기가 참 많지. 그게 이상하단 말이야.”
그는 계속 말했습니다.
“내 생각에 구약성경에는 16장, 신약성경에는 5~6장이 꿈 이야기를 하고 있어.
우리가 성경을 믿는다면 옛날에 하나님과 천사들은 사람들이 잘 때 꿈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곤 했지.
요즘에야 꿈이 아주 우스운 것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말이야.
사랑에 빠진 청춘남녀들이나 할머니들이나 꿈 이야기를 한다고 하지.”
그가 이렇게 진지하게 말하자 그 옆에 듣고 있던 그의 부인이 끼어들었습니다.
“당신, 꿈을 믿나요? 너무 심각해 보여요.”
그가 대답했습니다.
“내가 꿈을 믿는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최근에 꾼 꿈이 나를 떠나지 않고 괴롭힌다오.
꿈을 꾸고 나서 내가 성경을 펴보니까
희한하게도 창세기 28장에 기록돼 있는 야곱의 꿈 이야기가 나왔소.
다른 곳도 펴봤지만 볼 때마다 꿈이나 환상에 관한 구절을 본 것 같았소.”
그가 너무 심각하게 말하자 그의 부인이 소리쳤습니다.
“당신, 나에게 겁주지 마세요. 도대체 무슨 꿈인데 그래요?”
그의 부인도, 그의 친구 라몬도 그에게 꿈 이야기를 해달라고 재촉했습니다.
그는 주저하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습니다.
그는 얼굴에 우울한 그림자를 드리운 채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10일 전쯤에 나는 아주 늦게 침실에 들어갔지.
전방에서 올라온 중요한 전문을 기다리느라고 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고 있었어.
그리고 침실에 들어갔는데 너무 피곤해서 금세 잠이 들었어. 나는 곧 꿈을 꾸었지.
내 주위에는 죽음과 같은 적막이 감도는 것 같았어.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우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어.
참으려고 애쓰는 흐느낌이 들렸어.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아래층으로 내려갔지.
거기서도 슬픈 흐느낌이 정적을 깨뜨리고 있었는데 조문객은 보이지 않았어.
여기저기를 가봤는데 산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고 내가 지나칠 때마다 슬픈 소리가 나를 맞이했어.
나는 왜 그런지 알아보려고 계속 가다가 이스트 룸에 도착했어.
나는 거기서 아주 소름끼치는 것을 보았어. 내 앞에는 수의로 싼 시체가 있었어.
그 주위에는 호위병들이 서 있었고 많은 사람들도 모여 있었지.
어떤 사람들은 슬픈 눈초리로 얼굴이 가려져 있는 그 시체를 바라보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슬피 울고 있었어.
나는 한 호위병에게 물었어. ‘백악관에서 누가 죽었소?’
그가 대답했어. ‘대통령입니다. 암살당하셨습니다.’
그러자 군중들이 큰 소리로 울었고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네.
그날 밤에 나는 더 이상 잠들 수 없었어.
비록 그것이 꿈이라지만 지금까지 나는 마음이 편치 않다네.”
그의 부인이 말했습니다.
“당신, 그 꿈 이야기를 안 했으면 좋았을 뻔했어요. 무서워요.
나는 꿈을 믿지 않으니까 다행이에요. 그렇지 않다면 계속 공포에 사로잡혀 있을 거예요.”
그는 무슨 생각에 잠긴 듯이 대답했습니다.
“그래, 꿈에 불과해. 여보, 더 이상 이야기하지 맙시다. 잊어버리도록 합시다.
주님이 좋다고 생각하시는 때에 좋은 방식으로 이 일을 처리해 주시겠지요.
주님은 제일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알고 계시니까.”
그의 친구 라몬은 그의 꿈 이야기를 듣고는 곧 그대로 기록해 두었습니다.
얼마 후 링컨 대통령이 암살당하자 그는 자신의 일기에다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링컨 대통령의 일생에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그가 암살되기 얼마 전에 꾸었던 꿈이다.
그에게 있어 그 꿈은 생사를 넘나드는 것이었다.
그는 그 꿈대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다. 그는 그 꿈을 비밀로 해둘 수 없었던 것 같다.”
어떻습니까.
링컨 대통령이 꾼 꿈은 운명적인 것이었을까요.
암살되는 꿈을 꾸었으니 그 꿈대로 암살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요.
정말 그의 말대로 주님은 그가 암살당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셨을까요.
만일 그나 그의 부인이나 그의 친구가 그 꿈을 경고적인 것으로 해석하고 각성하여
특별기도와 함께 적절한 경호조치를 취했다면 암살을 모면할 수 있었지 않을까요.
주님은 꿈을 통해 그가 암살당하기 직전에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그에게 보내신 게 아닐까요.
그가 꿈을 꾸고 나서
성경을 펼칠 때마다 꿈 이야기가 나온 것만 봐도 우리는 그렇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도, 그의 부인도, 그의 친구도 그 꿈을 무시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실제로 그는 아주 허술한 경호 때문에 암살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멸망의 구렁텅이에서 건지시려고 꿈으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시는데
우리는 그 메시지를 무시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꿈으로 인한 일부 부작용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꿈 자체를 매도하거나 무시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사람은 무관히 여겨도 하나님은 한 번 말씀하시고 다시 말씀하시되
사람이 침상에서 졸며 깊이 잠들 때에나 꿈에나 밤의 이상 중에 사람의 귀를 여시고 인치듯 교훈하시나니
이는 사람으로 그 꾀를 버리게 하려 하심이며 사람에게 교만을 막으려 하심이라
그는 사람의 혼으로 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하시며 그 생명으로 칼에 멸망치 않게 하시느니라”(욥 33:14~18)
1) 트루엣 목사의 꿈
어느날 아놀드가 친구 트루엣 목사를 메추라기 사냥에 초대했습니다.
아놀드는 트루엣 목사가 섬기던 댈러스 제일침례교회 성도였습니다. 젊
은 트루엣 목사는 총을 이 손에서 저 손으로 옮기다가 실수로 방아쇠를 당겼고,
총알이 아놀드의 다리에 맞았습니다.
아놀드는 상처가 심하지 않다고 그를 안심시켰고 의사들과 간호사들도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아놀드는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트루엣 목사는 낙심천만이었습니다. 아내에게 더이상 회중 앞에서 말씀을 전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강단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습니다.
그는 한 주 동안 그 비통한 상황의 의미와 하나님의 위로를 구하면서 성경을 읽고 기도했습니다.
토요일 저녁 그의 입에서 “내 시대가 주의 손에 있나이다”라는 기도가 계속 나왔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그 사고 이후 처음으로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꿈에 예수님이 그를 찾아와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 말라. 지금부터 너는 내 사람이다.”
그는 깨어나 아내에게 꿈 이야기를 하고는 다시 잠들었는데
똑같은 꿈을 두 번, 세 번 꾸었습니다.
다음 날 그가 강단에 섰을 때 회중은 그의 설교가 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의 전기 작가는 이렇게 써놓고 있습니다.
“그날 아침 그의 목소리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지금은 잘 알려진 그 비애의 음색을 우리는 그날 처음 들었다.
어려움을 당한 자들을 돕는 그의 넓은 역량과 강단의 위력은 그 비극을 통해 태어났고
그는 새로 빚어진 것이었다.”
비극적인 사건이 젊은 트루엣 목사를 무너뜨리려고 했지만 주님이 주신 위로의 꿈이 그를 살려낸 것입니다.
주님은 꿈을 통해 그를 20세기 초 미국 최고의 설교자 중 한 사람으로 빚으셨던 것입니다.
삶의 위기 가운데 처해 있는 우리에게 주님은 지금도 꿈으로 찾아오시고 꿈으로 말씀하십니다.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지시는도다”(시 107:20)
2) 유진 피터슨 목사의 꿈
미국의 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목회자들의 목회자로 통합니다.
그는 특히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을 강조합니다. 그가 그렇게 일상의 영성을 강조하게 된 데에는
자신의 꿈 이야기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는 사순절 예배를 끝내고 초신자반 교육을 마무리짓고 책 원고를 탈고하고
대학강의의 기말고사 성적을 처리하다 보니 어느새 탈진 상태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충만한 영성을 제한한다고 생각했던,
병원심방과 같은 사소한 잡무를 신속하게 처리하고는 섬으로 휴가를 떠났습니다.
그는 부드러운 해안가를 거닐며 바닷새들을 경이롭게 바라보았습니다.
잔잔하게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의 편안한 리듬도 느꼈습니다.
달은 밝았고 밤새도록 산들바람이 텐트로 몰려들었습니다.
그 동안의 모든 피로를 씻어내고 불안의 먼지들을 깨끗하게 쓸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가 꿈을 꾸었습니다. 놀랍고도 생생한 꿈이었습니다.
마치 야곱이 벧엘에서 꾸었던 꿈처럼
구체적인 현실 속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느끼게 하는 꿈이었습니다.
그는 꿈에서 볼티모어에 있는, 한 서점 입구의 진열대에서 라는 제목의 책을 발견했습니다.
그 책은 뉴욕타임즈의 주간 베스트셀러 1위였습니다.
저자는 게리 엘링슨이었습니다. 그녀는 그가 시무하는 교회의 성도였고 그의 35년 된 친구였고
세 아이의 엄마였고 지극히 평범한 주부였습니다.
그는 흥분했습니다. ‘그녀가 베스트셀러 작가라니.’ 그는 그녀가 책을 쓰는 줄도 몰랐습니다.
그는 공중전화 부스로 가서 몬타나에 있는 그녀의 집에 전화했습니다.
“방금 당신 책을 봤어요. 베스트셀러더군요. 나는 당신이 작가라는 사실도 몰랐습니다.”
“정말요? 저는 그 책을 거의 평생토록 썼어요.”
“우와, 정말 몰랐어요. 축하해요. 당장 사서 읽어야겠군요.”
그는 전화를 끊고 그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 책의 내용 전체가 야채 목록, 세탁물 목록, 계산서 목록, 크리스마스카드 목록,
수선해야 하는 의류 목록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이야기도, 설명도 없이 오직 목록만 있었습니다.
그가 잠에서 깨었을 때 그는 그 꿈의 의미를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그가 위대한 영성을 방해하는 요소로 생각했던,
사소한 일상의 목록들이 거룩함의 원천이었던 것입니다.
그가 쓰레기쯤으로 치부하고 빨리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싶었던,
사소한 일거리들이 베스트셀러를 위한 소중한 재료였습니다.
그는 그 꿈을 꾼 이후로 공책 하나를 사서 만날 사람, 써야 할 편지,
심방, 기타 용건들을 적어넣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그 일기의 목록에 가치를 부여하고 그것을 놓고 기도했습니다.
그는 그 꿈을 통해
구체적인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이 참된 영성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후부터 유진 피터슨 목사는 영적인 성장을 위해 필요한
14가지 훈련 중의 하나로 ‘꿈해석’을 들 정도로 꿈을 중요하게 다루게 되었습니다.
2 어떻게 꿈을 해석하는가
성경에 따르면 꿈해석은 수천년 전부터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심리학적인 측면에서의 꿈해석은 프로이트(Sigmund Freud)로부터 시작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미신으로 천시되던 꿈을 해석함으로써 인간 이해의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그는 1,500년 동안 무시돼 온 꿈을 인간 치유의 도구로 활용했던 것입니다.
과연 그는 심리학적인 꿈해석의 선구자였습니다.
프로이트의 계보를 뒤이으면서도 그를 훨씬 능가하는 심층심리학자로 알려진 융(Carl Gustav Jung)은
꿈해석의 대가로 평가됩니다. 그는 초대교회의 꿈해석 전통에 처음으로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는 프로이트와 달리 꿈과 종교를 연계시켰습니다. 그는 인간의 의식이 자각하지 못하는
무의식의 현상을 꿈이 일깨워 준다고 보았습니다.
그에 따르면 꿈을 가장 잘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꿈꾼 사람 자신입니다.
꿈을 잘 해석하려면 꿈꾼 사람의 과거, 기억, 경험, 일, 대인관계와 환경 등을 고려해야 합니다.
이렇게 꿈해석이 프로이트와 융을 중심으로 발전돼 오다가 1
960년대에 들어 기독교 신앙에 근거한 꿈해석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성공회 사제인 켈시(M.T. Kelsey)와 샌포드(J.A. Sanford)는 융의 견해를 수용해 기독교적인 꿈해석을 시도했습니다.
이들은 융의 심리학과 전통신학을 화해시키는 일이 어느 지점까지는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고 봅니다.
이들은 융의 견해를 선택적으로 활용합니다. 이들은 융의 심리학에서 유익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가져다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들에 따르면 기독교 역사가 진행되는 동안 하나님은 줄곧 꿈을 통해 인간에게 말씀해 오셨습니다.
켈시는 자신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꿈에 대해 10년 넘게 연구했습니다. 그는 꿈을 통해 한층 풍성한 삶을 살게 됐다고 고백합니다.
“나는 내 꿈이 나의 잘 훈련되고 합리적인 마음보다 현명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꿈은 내가 위험에 처했을 때 나에게 경고해 주고 어떻게 그 위험에서 빠져 나올 것인지에 대해서도 암시해 준다.
나는 꿈의 상징적인 암시를 따르므로써 어둠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고,
내 삶에 희망이 나타났다. 무엇보다
나는 꿈을 통해 이전에는 생각지도 않은 방식으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할 수 있었다.
그래서 신학적으로 바싹 마른 나의 뼈는 살과 심줄로 덮이게 됐다.”
아래의 꿈해석 가이드는 주로 심층심리학적인 입장에서 다룬 것이지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꿈해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꿈에 대한 태도입니다.
꿈을 소중하게 대하면 꿈도 꿈꾼 사람에게 놀라운 비밀을 밝혀 줄 것입니다.
그렇다면 꿈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대부분의 꿈은 상징으로 이루어집니다.
상징은 꿈꾼 사람의 어떤 부분을 가리킵니다.
꿈에 어떤 인물이 나타났다면 그 인물은 꿈꾼 사람의 어떤 모습을 나타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꿈해석에 있어 중요한 것은 상징이 가리키는 실체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집이 무너지는 꿈을 꾸었다면 그 집은 꿈꾼 사람의 삶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반복적으로 꾸는 꿈이나 꿈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상징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꿈꾼 사람은 중요한 꿈을 꾸고도 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꿈꾼 사람의 심층심리가 반복적인 상징을 의식의 표면 위로 올려보냄으로써 어떤 문제의 해결을 계속 촉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등장 인물이 반복된다면 우리는 그 인물이 가리키는 실체에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꿈꾼 후 우리는 이런 질문들을 던짐으로써 꿈해석을 시도할 수 있습니다.
‘어디서 이 꿈이 왔는가. 왜 이 꿈을 꾸었는가. 이 꿈에서 내가 느낀 감정은 어떠했는가.
이 꿈을 꾼 후의 감정은 어떠했는가. 이 꿈에서 내가 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는가.
이 꿈은 내 삶의 어떤 부분과 연관돼 있는가. 이 꿈이 제기하는 문제는 무엇인가.
이 꿈이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이 꿈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꿈 속의 자아를 떠올리면서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꿈 속의 자아가 현실의 자아와 비슷한가. 그 태도나 행동이 현실의 자아와 비슷한가. 그 태도나 행동이 마음에 안 들어 바꾸고 싶은가. 꿈 속의 자아가 현실의 자아보다 더 적극적인가. 그렇다면 꿈 속의 자아가 현실의 자아를 그렇게 행동하도록 촉구하는 것이 아닌가. 꿈 속의 자아가 수동적이거나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꿈 속의 자아는 이전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더 나아졌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현실의 자아에게 용기를 갖도록 하려는 것이 아닌가.’
꿈 속의 등장 인물에게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왜 내 꿈에 나타났는가. 당신은 나를 어디로 인도하려는가. 어떻게 하면 당신의 인도를 잘 받을 수 있는가. 당신이 내게 주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꿈에서 당신은 왜 그렇게 행동했는가. 당신은 내게 무엇을 가르치려는가. 꿈에서 왜 내가 당신에게 그런 태도나 행동을 취했다고 생각하는가.’
꿈에서 이해할 수 없는 상징이 나타났다면 그 상징이 주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질문해 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꿈에 나타난 십자가는 고난과 희생, 삶의 기로, 깨어진 인간관계를 회복시키는 에너지 또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잊지 말라는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한편 입학, 졸업, 취직, 퇴직, 결혼, 이혼, 재혼과 같은 인생의 큰 전환점에서 꾸는 꿈은 특히 주의해서 살펴야 합니다.
꿈에 나타나는 적대자는 내 안에 있는 그림자를 드러내 줍니다. 그림자는 내가 직면하고 싶지 않은 나 자신의 어둡고 악한 측면입니다. 우리 내면의 깊은 곳에 억압돼 있는 파괴적인 본능, 악마적인 요소, 유치한 특성, 결점, 열등감, 분노, 반항심이 그림자를 형성합니다. 우리는 꿈을 통해 우리 자신의 그림자와 화해함으로써 그림자의 폭동을 예방하고 그림자의 에너지를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꿈에서 공격적으로 행동한다면 그것은 실생활에서 공격적일 필요가 있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꿈에서 수동적인 것, 비굴한 것, 운명론적인 것에서 벗어나고 자기 주장을 더욱 강화하고 자신의 삶과 환경을 더욱 주도적으로 운영하라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꿈에서 상대방에게 공격적이었다면 그 상대방에 대한 무의식적인 분노나 질투가 표현돼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본능을 무시하거나 억압하지 말고 건전하게 표출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누군가를 죽이는 꿈은 억압된 분노의 표출을 뜻합니다.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이 이런 꿈을 꾸게 됩니다. 이런 꿈을 꾸는 사람은 건강하고 의로운 분노를 적당하게 터뜨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또한 정당하게 거절하는 법도 배우고 그런 능력도 길러야 합니다. 직접 거절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거절해야 합니다.
싸우는 꿈은 가정이나 직장에서의 갈등을 나타냅니다. 본능적인 욕구와 사회적인 도덕 사이의 갈등을 나타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공격하는 상대방은 무의식의 지하감옥에서 탈출을 시도하는 자신의 숨겨진 일부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싸우는 꿈을 통해 갈등의 요소들을 화해시키는 방안을 찾을 수 있습니다.
꿈에 나타난 귀신은 귀신 그 자체일 수도 있겠지만 심층심리학적으로 볼 때 무의식적인 공포, 파괴적인 분노의 표현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것까지도 의식화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일부로 수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른이 된 후에도 어렸을 때 꾼 꿈이 계속 생각난다면 그 꿈은 꿈꾼 사람의 심층심리에 내재해 있는 어떤 문제의 해결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 문제는 어렸을 때 경험한 증오, 편견, 공포, 죄책감일 수 있습니다.
이혼하는 꿈은 지성과 감성의 분열, 남성성과 여성성의 분열, 의식과 무의식의 분열, 인간관계에서의 좌절을 표현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지하실로 들어가는 꿈은 우리가 직면하고 싶지 않은 무의식의 깊은 곳을 적절하게 드러낼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어떤 것으로부터 달아나는 꿈은 실생활에서 그것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 줍니다.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정면으로 맞서야 합니다.
하기 싫은 일을 하거나 원하지 않는 상황으로 끌려가는 꿈은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 무의식과의 새로운 관계, 나 자신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체로 몹시 부끄러워하는 꿈은 감정 표현을 두려워하는 나, 타인과의 인간관계가 개방적이지 못한 나, 회개하지 못하고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는 나를 상징합니다. 사람들 앞에서 벌거벗고는 창피해 어쩔 줄 몰라하는 꿈은 마음속의 부끄러운 죄를 씻어야 함을 밝혀 줍니다. 벌거벗었지만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심리적으로 자유로웠던 아동기를 그리워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괴로웠던 학창시절로 되돌아가는 꿈은 지금의 상태에 안주하지 말고 더 전진하고 한계에 도전하라는 격려의 메시지를 주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시험에 불합격하는 꿈은 현실에서 해결되지 않은 불안을 나타냅니다.
추락하는 꿈은 자만심이나 교만한 행동으로 인해 초래될 수 있는 비참한 결과를 경고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꿈에서 자신이 죽는 것은 과거의 낡은 가치관이나 습관, 잘못된 야심을 버리고 새로운 가치를 향해 나아가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여행을 떠나는 꿈은 자유에 대한 갈망, 부정적인 태도를 버리는 것, 새로운 가치관이나 생활방식을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허술한 건물을 배회하는 꿈에서 그 건물은 내 삶의 방식을 상징합니다.
꿈에서 내가 차를 운전한다면 내가 내 인생을 주도한다는 뜻이고 내가 승객이라면 타인이 내 인생을 통제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차가 달리는 방향이나 차도의 형태에 따라서 꿈해석이 달라질 것입니다. 차가 부서졌다면 삶이 그렇게 망가졌다는 것입니다.
꿈에 교회당의 촛불이 꺼져 있는 것을 보았다면 먼저 꿈꾼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야 합니다. 자신의 신앙에 문제가 없다면 교회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꿈에서 맛있는 음식을 자꾸 먹는다면 감기가 시작된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감기가 시작되면 목구멍이 가장 민감해집니다. 우리가 미처 의식하기도 전에 목구멍에서는 열이 나고 침을 삼키기도 어렵습니다. 이런 상태가 음식을 삼키는 꿈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1) 액면 그대로 해석하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꿈으로 말씀하십니다(민 12:6). 하나님은 우리의 질문에 대해 꿈으로 대답하십니다(삿 7:9~15).
하나님은 우리에게 꿈으로 하나님의 일을 가르쳐 주십니다(마 1:20~21).
하나님은 우리에게 꿈으로 경고하십니다(욥 33:14~18).
하나님은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꿈으로 경고하셨고(창 20:3~7)
야곱의 외삼촌 라반에게 꿈으로 경고하셨습니다(창 31:24).
하나님이 주신 꿈의 경고(마 2:12~13)를 동방박사들과 요셉이 무시했다면
아기 예수님의 목숨은 위태로웠을 것입니다.
어느 여성도가 꿈을 꾸었는데 담임목사님이 그녀에게 성경구절을 하나 짚어 주었습니다.
잠에서 깨어나 그녀가 그 성경구절을 찾아보니 잉태에 관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녀는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자신은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의사의 판정을 이미 받아놓은 상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날 그녀는 딸의 소화기관에 기생균이 있어 가족한테 전염될 수 있으니
가족이 다 약을 복용해야 한다는 의사의 지시를 받게 됐습니다.
그녀는 약을 복용하려다가 무심코 약병에 기록돼 있는 경고문을 보았습니다.
‘임산부가 복용하면 태아의 사망이나 유산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이미 임신불가 판정을 받은 몸이었기 때문에 약을 안 먹을 이유가 없었지만
그 꿈을 기억하고는 임신유무 테스트를 받아보았습니다. 놀랍게도 양성반응이 나왔고
마침내 그녀는 건강한 아이를 출산할 수 있었습니다.
대체로 경고의 꿈은 그대로 직독직해하면 됩니다.
어느날 꿈에서 제임스 라일 목사님은 자기 집안에 숨어 있는 방울뱀의 보금자리를 발견했습니다.
아이들이 걱정되었습니다. 어떻게 방울뱀들이 집안으로 들어왔는지 살펴보니
텔레비전을 통해서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 꿈을 통해 텔레비전이 아이들한테 큰 해독을 끼친다는 것을 깊이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로마황제 줄리어스 시저는 자기 아내 캘퍼니아가 자다가 신음하는 소리에 잠을 깼습니다.
캘퍼니아는 남편 시저가 자신의 팔에 안겨 피 흘리며 죽는 꿈을 꾸었다고 말했습니다. 그
녀는 남편 시저에게 집을 떠나지 말고 다음 날로 예정된 회의를 연기하라고 간청했습니다.
시저는 그러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그를 암살하려던 반역자들은 그의 심복 브루터스를 보내 충동질했습니다.
브루터스는 대제국 로마의 황제가 한 아녀자의 허망한 꿈에 놀아나서는 안된다면서
시저를 부추겼습니다.
결국 시저는 거드름을 피우는 걸음걸이로 반역자들한테로 갔고,
그들의 칼날에 암살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그 꿈대로 아내 캘퍼니아의 팔에 안겨 죽어갔던 것입니다.
캘퍼니아의 꿈은 운명적인 꿈이라기보다는 경고적인 꿈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내의 꿈을 통해 경고했으나 시저는 교만을 떨다가 암살당하고 만 것입니다(욥 33:14~18).
아내의 꿈을 무시하다가 패망한 사람 중의 하나는 로마총독 빌라도입니다. 그
는 아내의 경고적인 꿈에도(마 27:19) 불구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처형하는 오판을 범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제임스 로비손 목사님은 위험한 교차로에서 무서운 자동차 충돌사고를 당하는 꿈을 꾸고 깨어났습니다.
그는 가족들에게 그 불길한 꿈을 얘기하고 자신이 전도여행을 하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호해 주시라는 기도를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일주일 후 그는 꿈에서 보았던 그 교차로에서 차를 멈추었습니다. 그
가 속력을 내어 고속도로로 진입하려는데 화물차가 왼쪽에서 접근했습니다.
그 화물차의 운전수는 속도를 줄이고는 그가 빠져나가고 있는 거리 쪽으로 우회전하겠다는 신호를 주었습니다.
그는 주춤하면서 그 화물차가 돌고 있는지 확인하는데
그 화물차가 실제로 속도를 늦추는 것을 보고는 앞으로 나가 고속도로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순간 그는 그 꿈에서 보았던 끔찍한 충돌사고가 생각나서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속력을 내면서 달려오던 스포츠카가 그 앞을 휙 지나서 고속도로를 진입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천천히 오는 화물차에 가려서 그 스포츠카가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가 급정거하지 않았다면 꿈에서 본 그 끔찍한 충돌사고가 발생할 뻔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주로 경고의 꿈은 직독직해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꿈은 상징적이기 때문에 비틀어서 해석해야 합니다.
껍데기를 비틀면 알맹이가 나오듯이 상징적인 꿈은 그 상징을 비틀어야 원래 꿈이 의도하는 참 뜻이 나타납니다.
창세기 37장 6~9절에서 요셉이 연거푸 꿨던 곡식단 꿈과 별 꿈은 살짝 비틀면 그 참 뜻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셉의 형제들도 어렵지 않게 그 꿈의 메시지를 파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40장 9~19절에서
술 맡은 관원장이 꾸었던 포도송이 꿈과 떡 굽는 관원장이 꾸었던 떡 광주리 꿈,
그리고 창세기 41장 1~7절에서 바로가 꾸었던 일곱 암소와 일곱 이삭 꿈은 상당히 비틀어야
그 진의를 밝힐 수 있겠지요.
3 왜 꿈을 다루어야 하는가
그토록 꿈꾸는 거짓 선지자들을 질타하던 예레미야 선지자도 결국 자신의 꿈 이야기를 하고 맙니다(렘 31:23~26).
꿈 그 자체가 문제인 것이 아닙니다. 심리적인 꿈을 하나님이 주신 꿈으로 오용, 남용하는 것이 문제이지요.
하나님은 요즘도 꿈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꿈을 폐기처분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물론 성경에 나오는 꿈 이야기는 꿈이기 전에 이미 성경 말씀입니다.
꿈으로서의 권위보다는 성경으로서의 권위가 더 큰 것이지요.
그러니까 오늘날 우리가 꾸는 꿈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꿈 이야기를 다름아닌 성경 말씀으로 받아들이면서
그 말씀에 견주어 우리의 꿈 이야기도 다룰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꿈을 꾸고 꿈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회자들이 꿈의 유통을 막는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오
히려 건전한 방식으로 꿈이 유통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려면 목회자 자신이 꿈에 대해서 열려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꿈을 바르게 해석하고 바르게 적용하는 훈련이 돼 있어야 합니다.
목회자가 꿈을 금기시한다면 많은 성도들이 서로 은밀하게 꿈 이야기를 나누든지,
아니면 미신적인 해몽가들을 찾아다니게 될 것입니다.
이미 전화 상담이나 인터넷 상담을 하는 미신적인 해몽가들이 우후죽순처럼 번지는 실정입니다.
성도들은 어떻게든지 꿈을 이야기하고 싶어합니다.
이제 목회자들은 성도들의 꿈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성경적으로 바르게 꿈을 해석하고 바르게 적용하도록 잘 안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실제로 많은 성도들이 꿈에 매달립니다. 왜 그렇습니까. 거의 모든 성도들이 꿈을 꾸기 때문입니다.
환상을 보는 사람은 드뭅니다. 성령께서 환상을 주시지 않으면 누가 받겠습니까.
떤 형태로든지 하나님의 음성을 파악하는 사람은 더 드뭅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심리적인 꿈이라고 해도 꿈꾸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꿈에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얻어내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욕구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목회자들은 성도들의 이런 욕구를 누르기보다는 성경적인 방식으로 분출할 수 있도록 바르게 지도해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심리적인 꿈도 신앙 지도에 얼마든지 유용할 수 있습니다.
심리적인 꿈을 이야기함으로써 꿈꾼 사람은 자연스럽게 내면의 한 단면을 열어 보입니다. 그
래서 목회자는 꿈을 통해서 심리 상담, 신앙 상담, 진로 상담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목회자에게 선뜻 일상생활을 털어놓기는 어렵습니다. 그
러나 꿈 이야기는 아주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습니다. 꿈을 통한 신앙 상담과 진로 지도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꿈을 나누고 상담함으로써 내적인 치유와 함께 신앙 성장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하나님이 주시는 꿈이 최고입니다.
그러나 그런 꿈만 좋고 심리적인 꿈은 나쁘다는 이분법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최고지만 우리의 마음이 만들어내는 창조적인 아이디어도 귀한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이 만들어내는 심리적인 꿈도 경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귀할 수 있습니다.
잘 활용하기만 하면 우리는 심리적인 꿈을 통해서 내면의 상처나 갈등이나 무질서를 치유하고 내면의 질서와 성장을 꾀할 수 있습니다.
30대 후반의 한 여집사님이 자주 꿈에서 자기 집 안방에 누워 있는 시체를 보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시체가 부패해 가는데도 그것을 치워야 할 남편은 꿈쩍도 안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늘 안타까운 마음으로 꿈에서 깨어나곤 했습니다.
이 꿈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한 마디로 이 꿈은 그녀의 부부생활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녀의 부부생활은 부패해 가는 시체와도 같았습니다. 남편의 마음이 다른 여자한테 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 성도가 대학병원에서 대수술을 받기 전에 큰 개와 싸우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는 결국 그 개를 몰아내고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꿈은 그가 병마와 싸워 이기고 안도의 한숨을 쉴 때가 올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사실 그는 심각한 수술을 받아야 했고, 그 결과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목회자가 꿈을 해석하고 상담하고 지도하는 준비만 제대로 돼 있다면
꿈은 아주 유용한 목회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꿈은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를 보여 줍니다.
현재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가를 보여 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사건과 맞붙어 싸우는 싸움에서 어떤 결과가 초래될 것인가를 암시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성도들의 꿈을 바르게 해석하고 상담함으로써 그들의 신앙 성장을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위기상담학의 권위자인 정태기 박사님은 꿈해석을 통한 치유 목회의 가능성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꿈을 통해 참다운 삶의 의미를 더 깊이 지각하게 됩니다. 상처 입은 성격도 치유받게 됩니다.
꿈해석을 통해 하나님과의 만남이 더욱 깊어지고 우리의 영혼이 활력을 얻게 됩니다.
꿈해석은 우리의 갈등과 문제를 드러내는 한편 그런 문제의 저변에 숨어 있는 무한한 잠재력도 밝혀 줍니다.
꿈해석은 우리에게 희망과 가능성을 자각시켜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성장해 갈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을 갖게 해 줍니다.
꿈해석은 우리의 영·혼·육이 어떤 상태에 처해 있는가를 밝혀 줌으로써 그것을 치유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 줍니다.
더 나아가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 우리와 이웃과의 관계를 진단함으로써
우리의 병든 부분을 치유할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결국 꿈해석을 통해 우리는 전인 건강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1) 패키지 사역을 할 수 있다
비기독교 인터넷 사이트에서 한 여직원이 필자에게 이런 꿈 상담을 의뢰했습니다.
“저희 회사가 굉장히 큰 회사라서 직급이 높은 임원은 저를 알지도 못할 텐데
꿈에 한 임원이 나타나서 저더러 아들을 낳아달라는군요. 이런 황당한 일이 있을까요?”
다음과 같이 답신을 보냈습니다.
“이 꿈에서 아들을 낳아달라는 것은 뭔가 괜찮은 업적을 올려달라는 당부이지 않을까요.
전능하신 하나님께 지혜를 주시라고 기도하면 어떨까요.”
그러자 그녀로부터 이메일이 왔습니다.
“그렇군요. 요즘 회사에서 좀 뒤처지는 상황이었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멀리 했던 성경을 찾아봐야겠군요. 감사합니다.”
이처럼 꿈해석은 진로상담으로 이어지고 신앙상담까지 가능하게 해줍니다.
심지어 전도상담으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꿈 하나를 매개로 총체적인 상담사역이 가능하다는 말이지요.
꿈은 자고 나면 생기는 하찮은 눈곱이 아니라 성도들의 삶을 한층 풍요롭게 해주는 귀한 목회자원이 될 수 있습니다.
같은 비기독교 인터넷 사이트에서 필자가 꿈심리 상담을 하던 중
한 자매로부터 다음과 같은 꿈 이야기를 접하게 됐습니다.
“아버지가 집 마당에서 돌아가시고 나서 며칠 후 집에서 자다가 꿈을 꿨어요.
자는데 누가 부르는 것 같기도 하고 인기척이 있어서 방문을 열고 내다봤어요.
마당에 덩치 좋은 남자의 그림자가 저를 서서 지켜보는 겁니다.
아버지는 덩치 좋은 편이 아니었는데 저는 돌아가신 아버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렵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아빠를 불렀는데 그림자가 걷히면서 나타난 모습은 낯선 중년남자였습니다. 강
도나 귀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겁이 덜컥 나면서 깨었습니다.”
이 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신을 보냈습니다.
“꿈을 꾸고 나서 몹시 불안했겠군요.
그 그림자의 정체는 아빠가 아니라 아빠로 변장한 침입자입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귀신일 수도 있겠고 심층심리학에서 말하는 꿈꾼 사람의 깊은 내면에 숨어 있는 불안이나 두려움이나 어두움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다 근원을 알 수 없는 불안, 두려움, 어두움에 휩싸여 삽니다.
저도 한때 1분 단위로 한숨을 내쉬면서 살았지만 지금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고 평안하답니다. 혹시 기독교 신앙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그러자 그 자매로부터 이메일이 왔습니다.
“아, 네. 아빠가 집에서 돌아가셨는데 그 집에 사는 동안 제 꿈이나 엄마 꿈에 아빠가 자주 나왔어요.
꿈에 돌아가신 분이 자주 나오니 좋은 일은 아닌 것 같았어요.
작년 겨울에 새 집으로 이사를 왔는데 그 때 마지막으로 저와 엄마 꿈에 아빠가 한 번씩 나오고는 끝입니다.
이런저런 핑계로 교회에 안 나갔는데 다시 열심히 나가야겠어요.
속이 다 후련해요. 감사합니다.”
비기독교 인터넷 사이트에서 꿈심리 상담을 하다보면
이렇게 기독교 신앙을 찾겠다고 결심하는 사람들을 종종 접하게 됩니다.
꿈에는 꿈꾼 사람이 미처 각성하지 못하는 위기나 심리적인 갈등이 드러나 있습니다.
꿈심리 상담을 통해 이런 것을 통찰하게 해 줌으로써 자연스럽게 꿈꾼 사람을 기독교 신앙으로 이끌 수 있게 됩니다.[扈]
미국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이
하루는 자신의 절친한 친구 워드 힐 라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것을 잘 듣게.”
그는 천천히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습니다.
“성경에 보면 꿈에 대한 이야기가 참 많지. 그게 이상하단 말이야.”
그는 계속 말했습니다.
“내 생각에 구약성경에는 16장, 신약성경에는 5~6장이 꿈 이야기를 하고 있어.
우리가 성경을 믿는다면 옛날에 하나님과 천사들은 사람들이 잘 때 꿈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곤 했지.
요즘에야 꿈이 아주 우스운 것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말이야.
사랑에 빠진 청춘남녀들이나 할머니들이나 꿈 이야기를 한다고 하지.”
그가 이렇게 진지하게 말하자 그 옆에 듣고 있던 그의 부인이 끼어들었습니다.
“당신, 꿈을 믿나요? 너무 심각해 보여요.”
그가 대답했습니다.
“내가 꿈을 믿는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최근에 꾼 꿈이 나를 떠나지 않고 괴롭힌다오.
꿈을 꾸고 나서 내가 성경을 펴보니까
희한하게도 창세기 28장에 기록돼 있는 야곱의 꿈 이야기가 나왔소.
다른 곳도 펴봤지만 볼 때마다 꿈이나 환상에 관한 구절을 본 것 같았소.”
그가 너무 심각하게 말하자 그의 부인이 소리쳤습니다.
“당신, 나에게 겁주지 마세요. 도대체 무슨 꿈인데 그래요?”
그의 부인도, 그의 친구 라몬도 그에게 꿈 이야기를 해달라고 재촉했습니다.
그는 주저하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습니다.
그는 얼굴에 우울한 그림자를 드리운 채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10일 전쯤에 나는 아주 늦게 침실에 들어갔지.
전방에서 올라온 중요한 전문을 기다리느라고 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고 있었어.
그리고 침실에 들어갔는데 너무 피곤해서 금세 잠이 들었어. 나는 곧 꿈을 꾸었지.
내 주위에는 죽음과 같은 적막이 감도는 것 같았어.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우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어.
참으려고 애쓰는 흐느낌이 들렸어.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아래층으로 내려갔지.
거기서도 슬픈 흐느낌이 정적을 깨뜨리고 있었는데 조문객은 보이지 않았어.
여기저기를 가봤는데 산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고 내가 지나칠 때마다 슬픈 소리가 나를 맞이했어.
나는 왜 그런지 알아보려고 계속 가다가 이스트 룸에 도착했어.
나는 거기서 아주 소름끼치는 것을 보았어. 내 앞에는 수의로 싼 시체가 있었어.
그 주위에는 호위병들이 서 있었고 많은 사람들도 모여 있었지.
어떤 사람들은 슬픈 눈초리로 얼굴이 가려져 있는 그 시체를 바라보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슬피 울고 있었어.
나는 한 호위병에게 물었어. ‘백악관에서 누가 죽었소?’
그가 대답했어. ‘대통령입니다. 암살당하셨습니다.’
그러자 군중들이 큰 소리로 울었고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네.
그날 밤에 나는 더 이상 잠들 수 없었어.
비록 그것이 꿈이라지만 지금까지 나는 마음이 편치 않다네.”
그의 부인이 말했습니다.
“당신, 그 꿈 이야기를 안 했으면 좋았을 뻔했어요. 무서워요.
나는 꿈을 믿지 않으니까 다행이에요. 그렇지 않다면 계속 공포에 사로잡혀 있을 거예요.”
그는 무슨 생각에 잠긴 듯이 대답했습니다.
“그래, 꿈에 불과해. 여보, 더 이상 이야기하지 맙시다. 잊어버리도록 합시다.
주님이 좋다고 생각하시는 때에 좋은 방식으로 이 일을 처리해 주시겠지요.
주님은 제일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알고 계시니까.”
그의 친구 라몬은 그의 꿈 이야기를 듣고는 곧 그대로 기록해 두었습니다.
얼마 후 링컨 대통령이 암살당하자 그는 자신의 일기에다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링컨 대통령의 일생에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그가 암살되기 얼마 전에 꾸었던 꿈이다.
그에게 있어 그 꿈은 생사를 넘나드는 것이었다.
그는 그 꿈대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다. 그는 그 꿈을 비밀로 해둘 수 없었던 것 같다.”
어떻습니까.
링컨 대통령이 꾼 꿈은 운명적인 것이었을까요.
암살되는 꿈을 꾸었으니 그 꿈대로 암살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요.
정말 그의 말대로 주님은 그가 암살당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셨을까요.
만일 그나 그의 부인이나 그의 친구가 그 꿈을 경고적인 것으로 해석하고 각성하여
특별기도와 함께 적절한 경호조치를 취했다면 암살을 모면할 수 있었지 않을까요.
주님은 꿈을 통해 그가 암살당하기 직전에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그에게 보내신 게 아닐까요.
그가 꿈을 꾸고 나서
성경을 펼칠 때마다 꿈 이야기가 나온 것만 봐도 우리는 그렇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도, 그의 부인도, 그의 친구도 그 꿈을 무시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실제로 그는 아주 허술한 경호 때문에 암살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멸망의 구렁텅이에서 건지시려고 꿈으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시는데
우리는 그 메시지를 무시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꿈으로 인한 일부 부작용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꿈 자체를 매도하거나 무시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사람은 무관히 여겨도 하나님은 한 번 말씀하시고 다시 말씀하시되
사람이 침상에서 졸며 깊이 잠들 때에나 꿈에나 밤의 이상 중에 사람의 귀를 여시고 인치듯 교훈하시나니
이는 사람으로 그 꾀를 버리게 하려 하심이며 사람에게 교만을 막으려 하심이라
그는 사람의 혼으로 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하시며 그 생명으로 칼에 멸망치 않게 하시느니라”(욥 33:14~18)
1) 트루엣 목사의 꿈
어느날 아놀드가 친구 트루엣 목사를 메추라기 사냥에 초대했습니다.
아놀드는 트루엣 목사가 섬기던 댈러스 제일침례교회 성도였습니다. 젊
은 트루엣 목사는 총을 이 손에서 저 손으로 옮기다가 실수로 방아쇠를 당겼고,
총알이 아놀드의 다리에 맞았습니다.
아놀드는 상처가 심하지 않다고 그를 안심시켰고 의사들과 간호사들도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아놀드는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트루엣 목사는 낙심천만이었습니다. 아내에게 더이상 회중 앞에서 말씀을 전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강단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습니다.
그는 한 주 동안 그 비통한 상황의 의미와 하나님의 위로를 구하면서 성경을 읽고 기도했습니다.
토요일 저녁 그의 입에서 “내 시대가 주의 손에 있나이다”라는 기도가 계속 나왔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그 사고 이후 처음으로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꿈에 예수님이 그를 찾아와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 말라. 지금부터 너는 내 사람이다.”
그는 깨어나 아내에게 꿈 이야기를 하고는 다시 잠들었는데
똑같은 꿈을 두 번, 세 번 꾸었습니다.
다음 날 그가 강단에 섰을 때 회중은 그의 설교가 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의 전기 작가는 이렇게 써놓고 있습니다.
“그날 아침 그의 목소리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지금은 잘 알려진 그 비애의 음색을 우리는 그날 처음 들었다.
어려움을 당한 자들을 돕는 그의 넓은 역량과 강단의 위력은 그 비극을 통해 태어났고
그는 새로 빚어진 것이었다.”
비극적인 사건이 젊은 트루엣 목사를 무너뜨리려고 했지만 주님이 주신 위로의 꿈이 그를 살려낸 것입니다.
주님은 꿈을 통해 그를 20세기 초 미국 최고의 설교자 중 한 사람으로 빚으셨던 것입니다.
삶의 위기 가운데 처해 있는 우리에게 주님은 지금도 꿈으로 찾아오시고 꿈으로 말씀하십니다.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지시는도다”(시 107:20)
2) 유진 피터슨 목사의 꿈
미국의 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목회자들의 목회자로 통합니다.
그는 특히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을 강조합니다. 그가 그렇게 일상의 영성을 강조하게 된 데에는
자신의 꿈 이야기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는 사순절 예배를 끝내고 초신자반 교육을 마무리짓고 책 원고를 탈고하고
대학강의의 기말고사 성적을 처리하다 보니 어느새 탈진 상태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충만한 영성을 제한한다고 생각했던,
병원심방과 같은 사소한 잡무를 신속하게 처리하고는 섬으로 휴가를 떠났습니다.
그는 부드러운 해안가를 거닐며 바닷새들을 경이롭게 바라보았습니다.
잔잔하게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의 편안한 리듬도 느꼈습니다.
달은 밝았고 밤새도록 산들바람이 텐트로 몰려들었습니다.
그 동안의 모든 피로를 씻어내고 불안의 먼지들을 깨끗하게 쓸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가 꿈을 꾸었습니다. 놀랍고도 생생한 꿈이었습니다.
마치 야곱이 벧엘에서 꾸었던 꿈처럼
구체적인 현실 속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느끼게 하는 꿈이었습니다.
그는 꿈에서 볼티모어에 있는, 한 서점 입구의 진열대에서 라는 제목의 책을 발견했습니다.
그 책은 뉴욕타임즈의 주간 베스트셀러 1위였습니다.
저자는 게리 엘링슨이었습니다. 그녀는 그가 시무하는 교회의 성도였고 그의 35년 된 친구였고
세 아이의 엄마였고 지극히 평범한 주부였습니다.
그는 흥분했습니다. ‘그녀가 베스트셀러 작가라니.’ 그는 그녀가 책을 쓰는 줄도 몰랐습니다.
그는 공중전화 부스로 가서 몬타나에 있는 그녀의 집에 전화했습니다.
“방금 당신 책을 봤어요. 베스트셀러더군요. 나는 당신이 작가라는 사실도 몰랐습니다.”
“정말요? 저는 그 책을 거의 평생토록 썼어요.”
“우와, 정말 몰랐어요. 축하해요. 당장 사서 읽어야겠군요.”
그는 전화를 끊고 그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 책의 내용 전체가 야채 목록, 세탁물 목록, 계산서 목록, 크리스마스카드 목록,
수선해야 하는 의류 목록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이야기도, 설명도 없이 오직 목록만 있었습니다.
그가 잠에서 깨었을 때 그는 그 꿈의 의미를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그가 위대한 영성을 방해하는 요소로 생각했던,
사소한 일상의 목록들이 거룩함의 원천이었던 것입니다.
그가 쓰레기쯤으로 치부하고 빨리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싶었던,
사소한 일거리들이 베스트셀러를 위한 소중한 재료였습니다.
그는 그 꿈을 꾼 이후로 공책 하나를 사서 만날 사람, 써야 할 편지,
심방, 기타 용건들을 적어넣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그 일기의 목록에 가치를 부여하고 그것을 놓고 기도했습니다.
그는 그 꿈을 통해
구체적인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이 참된 영성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후부터 유진 피터슨 목사는 영적인 성장을 위해 필요한
14가지 훈련 중의 하나로 ‘꿈해석’을 들 정도로 꿈을 중요하게 다루게 되었습니다.
2 어떻게 꿈을 해석하는가
성경에 따르면 꿈해석은 수천년 전부터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심리학적인 측면에서의 꿈해석은 프로이트(Sigmund Freud)로부터 시작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미신으로 천시되던 꿈을 해석함으로써 인간 이해의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그는 1,500년 동안 무시돼 온 꿈을 인간 치유의 도구로 활용했던 것입니다.
과연 그는 심리학적인 꿈해석의 선구자였습니다.
프로이트의 계보를 뒤이으면서도 그를 훨씬 능가하는 심층심리학자로 알려진 융(Carl Gustav Jung)은
꿈해석의 대가로 평가됩니다. 그는 초대교회의 꿈해석 전통에 처음으로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는 프로이트와 달리 꿈과 종교를 연계시켰습니다. 그는 인간의 의식이 자각하지 못하는
무의식의 현상을 꿈이 일깨워 준다고 보았습니다.
그에 따르면 꿈을 가장 잘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꿈꾼 사람 자신입니다.
꿈을 잘 해석하려면 꿈꾼 사람의 과거, 기억, 경험, 일, 대인관계와 환경 등을 고려해야 합니다.
이렇게 꿈해석이 프로이트와 융을 중심으로 발전돼 오다가 1
960년대에 들어 기독교 신앙에 근거한 꿈해석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성공회 사제인 켈시(M.T. Kelsey)와 샌포드(J.A. Sanford)는 융의 견해를 수용해 기독교적인 꿈해석을 시도했습니다.
이들은 융의 심리학과 전통신학을 화해시키는 일이 어느 지점까지는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고 봅니다.
이들은 융의 견해를 선택적으로 활용합니다. 이들은 융의 심리학에서 유익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가져다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들에 따르면 기독교 역사가 진행되는 동안 하나님은 줄곧 꿈을 통해 인간에게 말씀해 오셨습니다.
켈시는 자신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꿈에 대해 10년 넘게 연구했습니다. 그는 꿈을 통해 한층 풍성한 삶을 살게 됐다고 고백합니다.
“나는 내 꿈이 나의 잘 훈련되고 합리적인 마음보다 현명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꿈은 내가 위험에 처했을 때 나에게 경고해 주고 어떻게 그 위험에서 빠져 나올 것인지에 대해서도 암시해 준다.
나는 꿈의 상징적인 암시를 따르므로써 어둠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고,
내 삶에 희망이 나타났다. 무엇보다
나는 꿈을 통해 이전에는 생각지도 않은 방식으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할 수 있었다.
그래서 신학적으로 바싹 마른 나의 뼈는 살과 심줄로 덮이게 됐다.”
아래의 꿈해석 가이드는 주로 심층심리학적인 입장에서 다룬 것이지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꿈해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꿈에 대한 태도입니다.
꿈을 소중하게 대하면 꿈도 꿈꾼 사람에게 놀라운 비밀을 밝혀 줄 것입니다.
그렇다면 꿈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대부분의 꿈은 상징으로 이루어집니다.
상징은 꿈꾼 사람의 어떤 부분을 가리킵니다.
꿈에 어떤 인물이 나타났다면 그 인물은 꿈꾼 사람의 어떤 모습을 나타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꿈해석에 있어 중요한 것은 상징이 가리키는 실체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집이 무너지는 꿈을 꾸었다면 그 집은 꿈꾼 사람의 삶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반복적으로 꾸는 꿈이나 꿈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상징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꿈꾼 사람은 중요한 꿈을 꾸고도 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꿈꾼 사람의 심층심리가 반복적인 상징을 의식의 표면 위로 올려보냄으로써 어떤 문제의 해결을 계속 촉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등장 인물이 반복된다면 우리는 그 인물이 가리키는 실체에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꿈꾼 후 우리는 이런 질문들을 던짐으로써 꿈해석을 시도할 수 있습니다.
‘어디서 이 꿈이 왔는가. 왜 이 꿈을 꾸었는가. 이 꿈에서 내가 느낀 감정은 어떠했는가.
이 꿈을 꾼 후의 감정은 어떠했는가. 이 꿈에서 내가 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는가.
이 꿈은 내 삶의 어떤 부분과 연관돼 있는가. 이 꿈이 제기하는 문제는 무엇인가.
이 꿈이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이 꿈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꿈 속의 자아를 떠올리면서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꿈 속의 자아가 현실의 자아와 비슷한가. 그 태도나 행동이 현실의 자아와 비슷한가. 그 태도나 행동이 마음에 안 들어 바꾸고 싶은가. 꿈 속의 자아가 현실의 자아보다 더 적극적인가. 그렇다면 꿈 속의 자아가 현실의 자아를 그렇게 행동하도록 촉구하는 것이 아닌가. 꿈 속의 자아가 수동적이거나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꿈 속의 자아는 이전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더 나아졌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현실의 자아에게 용기를 갖도록 하려는 것이 아닌가.’
꿈 속의 등장 인물에게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왜 내 꿈에 나타났는가. 당신은 나를 어디로 인도하려는가. 어떻게 하면 당신의 인도를 잘 받을 수 있는가. 당신이 내게 주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꿈에서 당신은 왜 그렇게 행동했는가. 당신은 내게 무엇을 가르치려는가. 꿈에서 왜 내가 당신에게 그런 태도나 행동을 취했다고 생각하는가.’
꿈에서 이해할 수 없는 상징이 나타났다면 그 상징이 주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질문해 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꿈에 나타난 십자가는 고난과 희생, 삶의 기로, 깨어진 인간관계를 회복시키는 에너지 또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잊지 말라는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한편 입학, 졸업, 취직, 퇴직, 결혼, 이혼, 재혼과 같은 인생의 큰 전환점에서 꾸는 꿈은 특히 주의해서 살펴야 합니다.
꿈에 나타나는 적대자는 내 안에 있는 그림자를 드러내 줍니다. 그림자는 내가 직면하고 싶지 않은 나 자신의 어둡고 악한 측면입니다. 우리 내면의 깊은 곳에 억압돼 있는 파괴적인 본능, 악마적인 요소, 유치한 특성, 결점, 열등감, 분노, 반항심이 그림자를 형성합니다. 우리는 꿈을 통해 우리 자신의 그림자와 화해함으로써 그림자의 폭동을 예방하고 그림자의 에너지를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꿈에서 공격적으로 행동한다면 그것은 실생활에서 공격적일 필요가 있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꿈에서 수동적인 것, 비굴한 것, 운명론적인 것에서 벗어나고 자기 주장을 더욱 강화하고 자신의 삶과 환경을 더욱 주도적으로 운영하라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꿈에서 상대방에게 공격적이었다면 그 상대방에 대한 무의식적인 분노나 질투가 표현돼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본능을 무시하거나 억압하지 말고 건전하게 표출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누군가를 죽이는 꿈은 억압된 분노의 표출을 뜻합니다.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이 이런 꿈을 꾸게 됩니다. 이런 꿈을 꾸는 사람은 건강하고 의로운 분노를 적당하게 터뜨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또한 정당하게 거절하는 법도 배우고 그런 능력도 길러야 합니다. 직접 거절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거절해야 합니다.
싸우는 꿈은 가정이나 직장에서의 갈등을 나타냅니다. 본능적인 욕구와 사회적인 도덕 사이의 갈등을 나타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공격하는 상대방은 무의식의 지하감옥에서 탈출을 시도하는 자신의 숨겨진 일부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싸우는 꿈을 통해 갈등의 요소들을 화해시키는 방안을 찾을 수 있습니다.
꿈에 나타난 귀신은 귀신 그 자체일 수도 있겠지만 심층심리학적으로 볼 때 무의식적인 공포, 파괴적인 분노의 표현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것까지도 의식화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일부로 수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른이 된 후에도 어렸을 때 꾼 꿈이 계속 생각난다면 그 꿈은 꿈꾼 사람의 심층심리에 내재해 있는 어떤 문제의 해결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 문제는 어렸을 때 경험한 증오, 편견, 공포, 죄책감일 수 있습니다.
이혼하는 꿈은 지성과 감성의 분열, 남성성과 여성성의 분열, 의식과 무의식의 분열, 인간관계에서의 좌절을 표현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지하실로 들어가는 꿈은 우리가 직면하고 싶지 않은 무의식의 깊은 곳을 적절하게 드러낼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어떤 것으로부터 달아나는 꿈은 실생활에서 그것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 줍니다.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정면으로 맞서야 합니다.
하기 싫은 일을 하거나 원하지 않는 상황으로 끌려가는 꿈은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 무의식과의 새로운 관계, 나 자신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체로 몹시 부끄러워하는 꿈은 감정 표현을 두려워하는 나, 타인과의 인간관계가 개방적이지 못한 나, 회개하지 못하고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는 나를 상징합니다. 사람들 앞에서 벌거벗고는 창피해 어쩔 줄 몰라하는 꿈은 마음속의 부끄러운 죄를 씻어야 함을 밝혀 줍니다. 벌거벗었지만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심리적으로 자유로웠던 아동기를 그리워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괴로웠던 학창시절로 되돌아가는 꿈은 지금의 상태에 안주하지 말고 더 전진하고 한계에 도전하라는 격려의 메시지를 주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시험에 불합격하는 꿈은 현실에서 해결되지 않은 불안을 나타냅니다.
추락하는 꿈은 자만심이나 교만한 행동으로 인해 초래될 수 있는 비참한 결과를 경고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꿈에서 자신이 죽는 것은 과거의 낡은 가치관이나 습관, 잘못된 야심을 버리고 새로운 가치를 향해 나아가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여행을 떠나는 꿈은 자유에 대한 갈망, 부정적인 태도를 버리는 것, 새로운 가치관이나 생활방식을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허술한 건물을 배회하는 꿈에서 그 건물은 내 삶의 방식을 상징합니다.
꿈에서 내가 차를 운전한다면 내가 내 인생을 주도한다는 뜻이고 내가 승객이라면 타인이 내 인생을 통제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차가 달리는 방향이나 차도의 형태에 따라서 꿈해석이 달라질 것입니다. 차가 부서졌다면 삶이 그렇게 망가졌다는 것입니다.
꿈에 교회당의 촛불이 꺼져 있는 것을 보았다면 먼저 꿈꾼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야 합니다. 자신의 신앙에 문제가 없다면 교회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꿈에서 맛있는 음식을 자꾸 먹는다면 감기가 시작된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감기가 시작되면 목구멍이 가장 민감해집니다. 우리가 미처 의식하기도 전에 목구멍에서는 열이 나고 침을 삼키기도 어렵습니다. 이런 상태가 음식을 삼키는 꿈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1) 액면 그대로 해석하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꿈으로 말씀하십니다(민 12:6). 하나님은 우리의 질문에 대해 꿈으로 대답하십니다(삿 7:9~15).
하나님은 우리에게 꿈으로 하나님의 일을 가르쳐 주십니다(마 1:20~21).
하나님은 우리에게 꿈으로 경고하십니다(욥 33:14~18).
하나님은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꿈으로 경고하셨고(창 20:3~7)
야곱의 외삼촌 라반에게 꿈으로 경고하셨습니다(창 31:24).
하나님이 주신 꿈의 경고(마 2:12~13)를 동방박사들과 요셉이 무시했다면
아기 예수님의 목숨은 위태로웠을 것입니다.
어느 여성도가 꿈을 꾸었는데 담임목사님이 그녀에게 성경구절을 하나 짚어 주었습니다.
잠에서 깨어나 그녀가 그 성경구절을 찾아보니 잉태에 관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녀는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자신은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의사의 판정을 이미 받아놓은 상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날 그녀는 딸의 소화기관에 기생균이 있어 가족한테 전염될 수 있으니
가족이 다 약을 복용해야 한다는 의사의 지시를 받게 됐습니다.
그녀는 약을 복용하려다가 무심코 약병에 기록돼 있는 경고문을 보았습니다.
‘임산부가 복용하면 태아의 사망이나 유산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이미 임신불가 판정을 받은 몸이었기 때문에 약을 안 먹을 이유가 없었지만
그 꿈을 기억하고는 임신유무 테스트를 받아보았습니다. 놀랍게도 양성반응이 나왔고
마침내 그녀는 건강한 아이를 출산할 수 있었습니다.
대체로 경고의 꿈은 그대로 직독직해하면 됩니다.
어느날 꿈에서 제임스 라일 목사님은 자기 집안에 숨어 있는 방울뱀의 보금자리를 발견했습니다.
아이들이 걱정되었습니다. 어떻게 방울뱀들이 집안으로 들어왔는지 살펴보니
텔레비전을 통해서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 꿈을 통해 텔레비전이 아이들한테 큰 해독을 끼친다는 것을 깊이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로마황제 줄리어스 시저는 자기 아내 캘퍼니아가 자다가 신음하는 소리에 잠을 깼습니다.
캘퍼니아는 남편 시저가 자신의 팔에 안겨 피 흘리며 죽는 꿈을 꾸었다고 말했습니다. 그
녀는 남편 시저에게 집을 떠나지 말고 다음 날로 예정된 회의를 연기하라고 간청했습니다.
시저는 그러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그를 암살하려던 반역자들은 그의 심복 브루터스를 보내 충동질했습니다.
브루터스는 대제국 로마의 황제가 한 아녀자의 허망한 꿈에 놀아나서는 안된다면서
시저를 부추겼습니다.
결국 시저는 거드름을 피우는 걸음걸이로 반역자들한테로 갔고,
그들의 칼날에 암살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그 꿈대로 아내 캘퍼니아의 팔에 안겨 죽어갔던 것입니다.
캘퍼니아의 꿈은 운명적인 꿈이라기보다는 경고적인 꿈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내의 꿈을 통해 경고했으나 시저는 교만을 떨다가 암살당하고 만 것입니다(욥 33:14~18).
아내의 꿈을 무시하다가 패망한 사람 중의 하나는 로마총독 빌라도입니다. 그
는 아내의 경고적인 꿈에도(마 27:19) 불구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처형하는 오판을 범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제임스 로비손 목사님은 위험한 교차로에서 무서운 자동차 충돌사고를 당하는 꿈을 꾸고 깨어났습니다.
그는 가족들에게 그 불길한 꿈을 얘기하고 자신이 전도여행을 하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호해 주시라는 기도를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일주일 후 그는 꿈에서 보았던 그 교차로에서 차를 멈추었습니다. 그
가 속력을 내어 고속도로로 진입하려는데 화물차가 왼쪽에서 접근했습니다.
그 화물차의 운전수는 속도를 줄이고는 그가 빠져나가고 있는 거리 쪽으로 우회전하겠다는 신호를 주었습니다.
그는 주춤하면서 그 화물차가 돌고 있는지 확인하는데
그 화물차가 실제로 속도를 늦추는 것을 보고는 앞으로 나가 고속도로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순간 그는 그 꿈에서 보았던 끔찍한 충돌사고가 생각나서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속력을 내면서 달려오던 스포츠카가 그 앞을 휙 지나서 고속도로를 진입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천천히 오는 화물차에 가려서 그 스포츠카가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가 급정거하지 않았다면 꿈에서 본 그 끔찍한 충돌사고가 발생할 뻔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주로 경고의 꿈은 직독직해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꿈은 상징적이기 때문에 비틀어서 해석해야 합니다.
껍데기를 비틀면 알맹이가 나오듯이 상징적인 꿈은 그 상징을 비틀어야 원래 꿈이 의도하는 참 뜻이 나타납니다.
창세기 37장 6~9절에서 요셉이 연거푸 꿨던 곡식단 꿈과 별 꿈은 살짝 비틀면 그 참 뜻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셉의 형제들도 어렵지 않게 그 꿈의 메시지를 파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40장 9~19절에서
술 맡은 관원장이 꾸었던 포도송이 꿈과 떡 굽는 관원장이 꾸었던 떡 광주리 꿈,
그리고 창세기 41장 1~7절에서 바로가 꾸었던 일곱 암소와 일곱 이삭 꿈은 상당히 비틀어야
그 진의를 밝힐 수 있겠지요.
3 왜 꿈을 다루어야 하는가
그토록 꿈꾸는 거짓 선지자들을 질타하던 예레미야 선지자도 결국 자신의 꿈 이야기를 하고 맙니다(렘 31:23~26).
꿈 그 자체가 문제인 것이 아닙니다. 심리적인 꿈을 하나님이 주신 꿈으로 오용, 남용하는 것이 문제이지요.
하나님은 요즘도 꿈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꿈을 폐기처분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물론 성경에 나오는 꿈 이야기는 꿈이기 전에 이미 성경 말씀입니다.
꿈으로서의 권위보다는 성경으로서의 권위가 더 큰 것이지요.
그러니까 오늘날 우리가 꾸는 꿈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꿈 이야기를 다름아닌 성경 말씀으로 받아들이면서
그 말씀에 견주어 우리의 꿈 이야기도 다룰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꿈을 꾸고 꿈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회자들이 꿈의 유통을 막는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오
히려 건전한 방식으로 꿈이 유통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려면 목회자 자신이 꿈에 대해서 열려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꿈을 바르게 해석하고 바르게 적용하는 훈련이 돼 있어야 합니다.
목회자가 꿈을 금기시한다면 많은 성도들이 서로 은밀하게 꿈 이야기를 나누든지,
아니면 미신적인 해몽가들을 찾아다니게 될 것입니다.
이미 전화 상담이나 인터넷 상담을 하는 미신적인 해몽가들이 우후죽순처럼 번지는 실정입니다.
성도들은 어떻게든지 꿈을 이야기하고 싶어합니다.
이제 목회자들은 성도들의 꿈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성경적으로 바르게 꿈을 해석하고 바르게 적용하도록 잘 안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실제로 많은 성도들이 꿈에 매달립니다. 왜 그렇습니까. 거의 모든 성도들이 꿈을 꾸기 때문입니다.
환상을 보는 사람은 드뭅니다. 성령께서 환상을 주시지 않으면 누가 받겠습니까.
떤 형태로든지 하나님의 음성을 파악하는 사람은 더 드뭅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심리적인 꿈이라고 해도 꿈꾸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꿈에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얻어내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욕구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목회자들은 성도들의 이런 욕구를 누르기보다는 성경적인 방식으로 분출할 수 있도록 바르게 지도해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심리적인 꿈도 신앙 지도에 얼마든지 유용할 수 있습니다.
심리적인 꿈을 이야기함으로써 꿈꾼 사람은 자연스럽게 내면의 한 단면을 열어 보입니다. 그
래서 목회자는 꿈을 통해서 심리 상담, 신앙 상담, 진로 상담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목회자에게 선뜻 일상생활을 털어놓기는 어렵습니다. 그
러나 꿈 이야기는 아주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습니다. 꿈을 통한 신앙 상담과 진로 지도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꿈을 나누고 상담함으로써 내적인 치유와 함께 신앙 성장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하나님이 주시는 꿈이 최고입니다.
그러나 그런 꿈만 좋고 심리적인 꿈은 나쁘다는 이분법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최고지만 우리의 마음이 만들어내는 창조적인 아이디어도 귀한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이 만들어내는 심리적인 꿈도 경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귀할 수 있습니다.
잘 활용하기만 하면 우리는 심리적인 꿈을 통해서 내면의 상처나 갈등이나 무질서를 치유하고 내면의 질서와 성장을 꾀할 수 있습니다.
30대 후반의 한 여집사님이 자주 꿈에서 자기 집 안방에 누워 있는 시체를 보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시체가 부패해 가는데도 그것을 치워야 할 남편은 꿈쩍도 안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늘 안타까운 마음으로 꿈에서 깨어나곤 했습니다.
이 꿈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한 마디로 이 꿈은 그녀의 부부생활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녀의 부부생활은 부패해 가는 시체와도 같았습니다. 남편의 마음이 다른 여자한테 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 성도가 대학병원에서 대수술을 받기 전에 큰 개와 싸우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는 결국 그 개를 몰아내고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꿈은 그가 병마와 싸워 이기고 안도의 한숨을 쉴 때가 올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사실 그는 심각한 수술을 받아야 했고, 그 결과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목회자가 꿈을 해석하고 상담하고 지도하는 준비만 제대로 돼 있다면
꿈은 아주 유용한 목회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꿈은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를 보여 줍니다.
현재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가를 보여 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사건과 맞붙어 싸우는 싸움에서 어떤 결과가 초래될 것인가를 암시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성도들의 꿈을 바르게 해석하고 상담함으로써 그들의 신앙 성장을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위기상담학의 권위자인 정태기 박사님은 꿈해석을 통한 치유 목회의 가능성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꿈을 통해 참다운 삶의 의미를 더 깊이 지각하게 됩니다. 상처 입은 성격도 치유받게 됩니다.
꿈해석을 통해 하나님과의 만남이 더욱 깊어지고 우리의 영혼이 활력을 얻게 됩니다.
꿈해석은 우리의 갈등과 문제를 드러내는 한편 그런 문제의 저변에 숨어 있는 무한한 잠재력도 밝혀 줍니다.
꿈해석은 우리에게 희망과 가능성을 자각시켜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성장해 갈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을 갖게 해 줍니다.
꿈해석은 우리의 영·혼·육이 어떤 상태에 처해 있는가를 밝혀 줌으로써 그것을 치유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 줍니다.
더 나아가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 우리와 이웃과의 관계를 진단함으로써
우리의 병든 부분을 치유할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결국 꿈해석을 통해 우리는 전인 건강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1) 패키지 사역을 할 수 있다
비기독교 인터넷 사이트에서 한 여직원이 필자에게 이런 꿈 상담을 의뢰했습니다.
“저희 회사가 굉장히 큰 회사라서 직급이 높은 임원은 저를 알지도 못할 텐데
꿈에 한 임원이 나타나서 저더러 아들을 낳아달라는군요. 이런 황당한 일이 있을까요?”
다음과 같이 답신을 보냈습니다.
“이 꿈에서 아들을 낳아달라는 것은 뭔가 괜찮은 업적을 올려달라는 당부이지 않을까요.
전능하신 하나님께 지혜를 주시라고 기도하면 어떨까요.”
그러자 그녀로부터 이메일이 왔습니다.
“그렇군요. 요즘 회사에서 좀 뒤처지는 상황이었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멀리 했던 성경을 찾아봐야겠군요. 감사합니다.”
이처럼 꿈해석은 진로상담으로 이어지고 신앙상담까지 가능하게 해줍니다.
심지어 전도상담으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꿈 하나를 매개로 총체적인 상담사역이 가능하다는 말이지요.
꿈은 자고 나면 생기는 하찮은 눈곱이 아니라 성도들의 삶을 한층 풍요롭게 해주는 귀한 목회자원이 될 수 있습니다.
같은 비기독교 인터넷 사이트에서 필자가 꿈심리 상담을 하던 중
한 자매로부터 다음과 같은 꿈 이야기를 접하게 됐습니다.
“아버지가 집 마당에서 돌아가시고 나서 며칠 후 집에서 자다가 꿈을 꿨어요.
자는데 누가 부르는 것 같기도 하고 인기척이 있어서 방문을 열고 내다봤어요.
마당에 덩치 좋은 남자의 그림자가 저를 서서 지켜보는 겁니다.
아버지는 덩치 좋은 편이 아니었는데 저는 돌아가신 아버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렵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아빠를 불렀는데 그림자가 걷히면서 나타난 모습은 낯선 중년남자였습니다. 강
도나 귀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겁이 덜컥 나면서 깨었습니다.”
이 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신을 보냈습니다.
“꿈을 꾸고 나서 몹시 불안했겠군요.
그 그림자의 정체는 아빠가 아니라 아빠로 변장한 침입자입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귀신일 수도 있겠고 심층심리학에서 말하는 꿈꾼 사람의 깊은 내면에 숨어 있는 불안이나 두려움이나 어두움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다 근원을 알 수 없는 불안, 두려움, 어두움에 휩싸여 삽니다.
저도 한때 1분 단위로 한숨을 내쉬면서 살았지만 지금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고 평안하답니다. 혹시 기독교 신앙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그러자 그 자매로부터 이메일이 왔습니다.
“아, 네. 아빠가 집에서 돌아가셨는데 그 집에 사는 동안 제 꿈이나 엄마 꿈에 아빠가 자주 나왔어요.
꿈에 돌아가신 분이 자주 나오니 좋은 일은 아닌 것 같았어요.
작년 겨울에 새 집으로 이사를 왔는데 그 때 마지막으로 저와 엄마 꿈에 아빠가 한 번씩 나오고는 끝입니다.
이런저런 핑계로 교회에 안 나갔는데 다시 열심히 나가야겠어요.
속이 다 후련해요. 감사합니다.”
비기독교 인터넷 사이트에서 꿈심리 상담을 하다보면
이렇게 기독교 신앙을 찾겠다고 결심하는 사람들을 종종 접하게 됩니다.
꿈에는 꿈꾼 사람이 미처 각성하지 못하는 위기나 심리적인 갈등이 드러나 있습니다.
꿈심리 상담을 통해 이런 것을 통찰하게 해 줌으로써 자연스럽게 꿈꾼 사람을 기독교 신앙으로 이끌 수 있게 됩니다.[扈]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일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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