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이야기

[스크랩] 멜기세덱의 계통의 대제사장

쟝리 2010. 7. 27. 12:21

멜기세덱의 계통의 대제사장

글/이상봉 목사

본문 - 히브리서 4:14-5:10, 7:1-28  

 

 히브리서 기자는 독자들에게 5장에서 멜기세덱에 대해 말하려 하다가 그들의 수준이 너무나 낮기 때문에 그 말을 알아듣기 힘들다고 생각하고 멜기세덱에 대한 언급을 잠시 유보하고 신자의 신앙 성장에 대해 먼저 언급했다.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기 어려우니라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히5:11-13)

 

 그리고는 다시 6장- 마지막에 가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에 대해 말을 했다.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히6:20) 7장은 이 6장 마지막의 말씀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본문의 말씀을 통해 기자는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주 예수님이 모세의 법을 따라 되어진 레위 계통의 제사장이 아니라 멜기세덱의 반차(계통)를 좇은 새롭고 완전한 제사장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 멜기세덱은 누구인가?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아브라함 시대에 이방인으로서 이미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받고 있던 사람이다.(창14장) 소돔에 살던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소돔을 침략한 네 왕에게 사로잡혀 갔을 때 아브라함은 군사를 이끌고 그들을 쫓아가 싸워서 사람들과 물건들을 찾아왔다. 그때 살렘 왕 멜기세덱은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서 아브라함을 맞이하며 축복하기를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의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라고 했다.(창14:19,20) 이때 아브라함은 자기가 얻은 물건의 십분의 일 곧 십일조를 멜기세덱에게 드렸다.

참고자료=☞[난해]살렘왕 멜기세덱은 누구일까?


 히브리서 기자는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친 것을 들어서 주님의 제사장직이 레위의 제사장직보다 우월하다고 말한다. 그것은 레위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주 예수님의 모형인 멜기세덱에게 헌물을 바쳤기 때문이다. 바친 자보다 받은 자가 더 높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이 레위지파의 제사장직보다 먼저이며 높다. 멜기세덱의 계통을 좇은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이 레위 계통의 제사장직보다 더 나은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다음 두 가지로 설명될 수 있다.


『첫째』,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은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이 사람의 죄를 사하기 위해 번번이 제물 곧 동물을 잡아 제사를 드려야 했던 것과는 달리 제사장이신 주님 자신을 제물로 드려 하나님의 요구를 근본적으로 만족시키는 완전한 제사를 단번에 드렸다. 그러므로 다시 다른 제사가 필요 없게 되었다.


『둘째』, 구약의 제사는 단지 제사장 자신의 헌신이었을 뿐 제물을 드린 백성들을 실제적으로 변화시키지는 못했고 또 그들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실제적으로 온전케 하지 못한데 비해 우리 주님의 제사는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받으실만한 제물이 될 뿐 아니라 자기를 힘입는 우리를 자기 안으로 이끌어서 우리로 주님 자신과 같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장과 제물이 되게 하셨다는 점이다. 주님은 우리 자신을 자기의 자리로 이끄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온전케 만드셨다.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를 구원하실 수 있으니·····”(7:25)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7:14)

그러므로 멜기세덱의 계통을 따른 주님의 제사장직은 자연스럽게 그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 또한 적용되게 되었다.

 

 그의 이름인 멜기세덱을 번역하면 義의 王이고 그의 나라인 살렘을 번역하면 평강이니 그는 의의 왕이요 평강의 왕인 셈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에 대해 말하기를 ‘그는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고 했다. 어떻게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는가? 이는 상징적인 표현이다. 그것은 『영에 속한 사람』 곧 영(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요한복음 3:7,8을 보면 주님은 영에 속한 사람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네가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며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와 같으니라”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가 묘사한 멜기세덱의 신비한 존재는 곧 주 예수님을 비롯하여 영으로 거듭난 오늘 우리 성도들의 영적 실상을 묘사한 것이다. 멜기세덱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사람』을 대표하는 자요 상징하는 인물인 것이다.


 멜기세덱의 제사장직은 레위지파가 모세의 법을 좇아 맡은 제사장직과는 근본적으로 다른데 그 근본적 차이는 바로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사람 자신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다. 레위 제사장직은 그 사람의 인격(제사장 됨)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단지 法과 制度(하나님의 임명)에서 나온 것이다. 곧 구약의 레위지파의 제사장직은 생명을 따른 것이 아니라 儀文을 따른 것이다. 구약에 있어서는 설사 제사장 자신이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고 하나님을 섬길 마음조차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제사장일 수 있다.

 

 그는 다만 하나님이 그에게 씌운 직제에 의해 하나님을 섬길 따름이다. 그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생명 안에 하나님 섬기는 것이 새겨져 있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법에 의해 할 수 없이 혹은 직업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땅에서 나온 제사장이요 율법을 좇아 세워진 제사장직이다.


그러나 이 같은 모세의 법을 좇은 제사장직은 결코 하나님의 궁극적 목표가 아니다.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최초의 목적, 궁극적 목적은 사람이 하나님을 자기 것(자기 생명)으로 섬기는 것이다.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멜기세덱의 제사장직이다. 레위 제사장직이 모든 것의 처음이 아닌 것이다. 그 제도가 생기기 오래 전 아브라함 때에 이미 레위 제사장직을 넘어서는 영원한 제사장이 있었다.

 

그 제사장직은 법에 의한 제사장직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으로 말미암아』본질상 제사장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직이었다. 기자는 그를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한 사람이라고 했는데 이 말은 곧 그의 생명이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이요 하나님을 자기 것으로 섬기는 생명이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살렘 왕 멜기세덱을 통해 나타난 참 제사장직이야말로 하나님이 처음부터 생각하고 있던 완전한 제사장직이요 그리스도를 통해 분명하고 완전하게 드러난 이 제사장직이야말로 오늘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어질 영원한 제사장직인 것이다. 


7:16에서 기자는 “그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을 좇지 아니하고 오직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된 것이니”라고 말하고 있다.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율법을 말한다. 왜 율법을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이라고 했는가? 그것은 율법이 타락하여 (영적 존재가 아니라) 육체가 되어 버린(창6:3) 인생에게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육체에 상관된 법이 아닌 다른 법도 있는가? 있다. 그것이 바로 주 예수님 안에서 역사하여 주님을 대제사장으로 만든 『생명의 법』이다. 멜기세덱도 주님도 그리고 주님 안에서 제사장이 된 우리도 다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을 좇아 제사장이 된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서 역사하는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제사장이 된 것이다.


무궁한 생명의 능력 곧 하나님의 영이 사람 속에서 작용하여 사람을 지배할 때 그것을 『생명의 법』이라고 한다. 원래 사람은 이 법의 지배를 받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사람이 타락하므로 육체가 되었기 때문에 생명의 법에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율법)의 지배를 받게 된 것이다. 로마서에서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죄와 사망의 법의 지배에서 해방되어 생명의 성령의 법 아래에 놓여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8: 1,2)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행하는 사람은 생명 외의 그 어느 것에도 매이지 않는다. 그런 것의 제재나 강요를 받지 않더라도 그 생명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하나님을 기쁘게 섬길 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멜기세덱의 계통을 따른 제사장직은 그 사람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므로 누가 파면한다고 해서 파면되는 것도 아니요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도 없는 것이다. 그 속에 제사장의 생명이 있어서 제사장이 된 사람을 누가 임명하겠으며 또 누가 면직하겠는가? 그리스도와 오늘 우리 성도의 제사장직은 이처럼 영원하고 완전한 것이다.


구약 레위 제사장직은 오늘의 영원한 제사장직에 비해 지극히 불완전하고 임시적인 것이었다. 그것은 그림자와 모형에 불과했다. 그러한 제사장과 제사로는 진정으로 사람들의 죄를 사할 수도 없었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온전케 할 수도 없었다. 많은 제사장들이 경제적 궁핍에 빠졌을 때 그들의 직을 버렸다. 말라기 시대에 십일조가 걷히지 않아서 제사장들이 월급을 받지 못하자 제사장직을 버리고 도망가 버리기도 했다. 많은 제사장들이 제사보다 제사상에 올라온 고기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들은 무궁한 생명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요즘도 많은 성도들이 (특별히 목사와 같은 지도자들도) 구약의 제사장 즉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을 좇아 제사장이 된 사람들처럼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제사장 자신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제물이 되지 못하는 제사는 받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마음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없이 종교 의식만 행하는 일은 사실 구약시대에도 전적으로 헛된 일로 여겨졌음을 알아야 한다.(사1:10-17)   

 
 우리는 신약 성도로서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섬길 제사장으로 부르심을 받았다. “사람에게는 버림을 받았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벧전2:3-5)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벧전2:9)


 우리의 제사장직은 레위 계통을 따른 육체적 제사장직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삶으로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영적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직이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리라.”(롬12:1) 자 이제 여러분에게 분명하게 말하고자 한다. 우리는 왜 하나님을 섬기는가? 무엇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는가? 그것은 오직 우리 생명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생명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생명이기 때문이다. 우리 육체가 그렇게 변했다는 것이 아니다. 육은 어디까지나 육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뜻도 없고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오직 하나님이 우리 속에 넣어주신 새 생명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이제 어떤 존재인가를 깊이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영을 좇아 행하기만 한다면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 명령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 것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베드로의 말씀과 같이 우리는 다 그리스도 안에서 왕이요 선지자요 제사장이다. 주 예수님도 세상에 계실 때 왕이요 선지자요 제사장으로 사셨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주님이 누구로부터 그런 직책에 임명된 적은 없다. 주님이 이러한 일을 수행하실 때 바리새인들이 주님께 나아와 물었다. “네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냐? 누가 너에게 이 권세를 주었느냐?”이때 주님은 ‘세례 요한의 권세는 하늘로부터냐? 사람에게로부터냐?’고 되물으심으로써 당신의 권세가 하늘로부터 주어진 생명의 권세임을 나타내셨다.(막11:27-33)

 

주님은 아무에게도 무슨 직위를 받으시지 않았지만 그 속에 하나님의 생명이 충만했으므로 하나님을 완전하게 대표하실 수 있었다. 그에게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충만했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놀라운 권세로 얼마든지 가르칠 수 있었고 그 선지자직, 선생직은 사람의 임명을 받은 어떤 사람의 職보다 월등한 것이었다. 심지어 주님은 사람들에게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고 말씀하실 수도 있었다.


 또 주님은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여 그 몸과 마음을 다 바치셨다. 심지어 목숨조차 기꺼이 드렸다. 그러므로 주님은 아무에게도 제사장으로 임명받지 않았지만 그 속에 제사장으로 하나님을 섬길 마음이 충만했기 때문에 최고의 대제사장이 되신 것이다. 또 주님은 아무 벼슬도 없었지만 하나님을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그 무엇에도 매이지 않으셨다. 주님은 무엇에도 지배되지 않으셨고 구속되지 않으셨다. 그는 만물 가운데서 완전한 왕권을 행사하셨다. 그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올바르게 사용하셨다. 돈도 시간도 재물도 명예도 다 그 뜻대로 지배하며 다스릴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우주 가운데 최고의 왕이신 것이다. 주님은 아무 것도 아니요 오직 사람일뿐이었다. 그러나 만물의 영장이요 하나님의 아들인 사람의 위치를 똑바로 유지하셨다. 그것으로 주님은 얼마든지 만물의 왕 노릇을 하실 수 있었다. 주님은 하늘의 하나님의 자리에서가 아니라 그 사람의 자리에서 천사조차 마음대로 부리셨다. 심지어 주님은 목숨도 자기 뜻대로 버리기도 하고 취하기도 한다고 하셨다.(요10:17-19) 하나님의 뜻에 따라 목숨조차 스스로 버리는 사람이 다른 무엇의 종이 되겠는가? 모든 참된 직분과 권세는 여기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지금 어떤 자리에 있는지를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제사장으로 세우신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제사장직이 어떤 제사장직인지를 알아야 한다. 우리는 레위 계통의 직업적, 육체적 제사장이 아니라 멜기세덱 계통을 좇아 그리스도와 함께 무궁한 생명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섬길 제사장으로 세움을 입은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주님과 같이 당당하고 완전한 왕과 제사장이 되어야 한다. 누가 본다고, 누가 시킨다고, 무슨 이익이 있다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요 우리 안에 있는 아들의 생명으로 즐거이 하나님을 섬기도록 해야 한다.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온전한 제사장의 삶을 살기를 원한다.扈ⓗ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일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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