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이야기

[스크랩] 성경이 곧 예수에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로다.

쟝리 2010. 7. 27. 13:10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로다.

 

요한복음5:39-41절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나는 사람에게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성경보다 더 소중한 말씀이 어디 있겠습니까?

물론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이고 선택이지만 그 경륜을 우리 인생이 알기 쉽게 기록한 말씀이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이 아니고는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은혜를 주시는 그 구원의 경륜을 알 수 없습니다. 그 성경이 보편화가 되었습니다. 또 자기가 마음만 먹으면 여러 가지로 번역이 되어 있는 성경을 언제든지 볼 수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개역 성경을 기초로 삼아서 보고 있지만 표준새번역, 공동번역, 킹제임스, 쉬운성경등 몇 가지를 항상 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각 성경 마다 이해하기 쉽게 번역이 되어 있는 부분이 있어서 대조를 해 가면서 보면 어려운 말씀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아니고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습니다. 환상을 본다. 기도를 통해 응답을 받는다. 또 어떤 일을 행하다가 마음에 감동을 받는다고 하지만 성경이 기본이 안 된 상태에서 잘못 그런 것에 빠지게 되면 하나님의 뜻과는 아무 상관이 없이 자기 생각에 좋은 대로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요즘은 문제가 많습니다. 목사를 안수 받는 사람들도 성경을 읽지 않아도 되는 그런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인터넷을 검색을 하면 또 설교를 유로로 제공하는 사이트를 보면 자기가 원하는 제목의 설교를 언제든지 얻을 수 있고 거기에다가 약간의 살만 붙이면 말씀을 전하는데 아무 문제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목사가 그런데 교인들이야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물론 성경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그가 반드시 구원을 받는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어려서부터 성경을 읽고 살아왔지만 오히려 그들은 율법주의에 빠져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성도는 성경을 늘 가까이 하고 읽어야 합니다. 문제는 성경을 보는 사상입니다. 복음을 듣고 보는 성도는 성경을 바르게 분별하면서 성령의 감동을 받을 수 있지만 복음이 아닌 율법을 듣고 있는 사람들은 수백 독을 한다 해도 복음을 깨닫지 못하고 율법주의에 빠져서 벗어 나오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기본적으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 시대에 와서 복음을 가르쳐 준다 해도 성경을 읽지 않는다면 그는 금세 다시 율법주의로 빠져 버린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정말 참 복음을 들었다 해도 스스로 그 복음에 대해서 성경을 통해 확증을 하지 못한다면 그가 들은 복음은 잠시 얻은 기쁨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초대 교회부터 이단들이 나왔습니다. 그들이 이단이 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성경이 무엇을 기록하고 있는 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는 가를 모른다면 다른 복음에 빠질 수밖에 없고 또 이단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의 핵심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본질이 무엇인가를 아는 성도는 절대로 다른 복음에 미혹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자녀를 낳아 기릅니다. 부모는 자기가 낳은 자녀를 보는 것만으로 기쁨을 얻게 됩니다. 공부를 잘 한다 그 아이가 남들 보다 잘 생겼다 그리고 그 아이가 성실하고 착하다 이런 조건들은 아이에게 있어서 하나의 부가적인 은사에 불과합니다. 만약 아이가 죽는다면 그 은사가 아무리 뛰어나 서울 대학교를 수석으로 합격을 했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가 김연아가 되어서 온 국민의 사랑을 받으면 무엇 할 것입니까? 물론 김연아가 피겨를 잘 타서 온 국민의 사랑을 받는 것 참으로 기분 좋은 일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김연아라는 그 존재 자체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것 보다 더 크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본질은 김연아입니다. 생명이 있을 때 김연아가 빛이 나는 것입니다. 만약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만 불의의 사고가 난다면 김연아가 가진 은사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고 맙니다. 김연아가 정상적일 때 그녀가 가진 은사가 빛이 나는 것인데도 사람들은 그런 은사를 아주 당연하게 그리고 마치 김연아인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중심은 예수입니다.

 그 외에 모든 것은 다 하나의 부수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은사가 아무리 좋으면 뭐할 것입니까? 내가 율법을 아주 잘 지켜 모든 사람들로부터 의인이라는 말을 들으면 무엇 할 것입니까? 예수가 없다면 그런 것은 하나의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병자를 고치면 무엇 합니까? 죽은 자를 살리면 또 무엇 할 것입니까? 그리고 모든 사람들을 감동하게 하는 찬양을 부르면 무엇 할 것입니까? 물론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두가 다 예수가 있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그러나 마태복음에 보면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고 주의 이름으로 병을 고치고 했던 그들이 예수가 없어서 버림을 받는 것을 보게 됩니다.

 

본질이 중요 합니다. 그 외에 것은 다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 하나를 얻고 모든 것을 다 버릴 수 있는 사람만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여러분의 믿음은 다 헛것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물론 둘 다 잘하면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그 외에 것은 가볍게 여기고 그 외에 것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은 분명히 본질을 가볍게 여긴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둘 다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어떤 사람입니까? 사람의 예로 볼 때 흠이 없고 자기 생명조차도 아깝게 여기지 않고 복음을 위해 살다가 순교를 한 사람입니다. 그런 그도 본질인 예수를 얻기 위해서 자기의 흠 없는 율법의 의를 배설물처럼 버린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를 얻기 위해서는 내 율법의 의도 버려야 하고 예수를 얻기 위해서는 내 은사도 가볍게 여겨야 하고 예수를 얻기 위해서는 교회에서 하는 모든 일을 마음속에 기억해서도 안 됩니다 어느 사도가 자기 은사를 자랑하고 자기 율법의 의를 자랑하고 또 자기가 한 일을 자랑했습니까? 모두가 예수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예수를 얻으려고 하기 보다는 그런 외적인 것을 얻기 위해서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주일이 되어 버렸고 예수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십일조가 되어 버렸고 예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자기들이 가진 은사가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집사를 세우는데 있어 그 조건이 주일을 성수하고 또 십일조를 내고 또 교회의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자라고 합니다. 집사의 조건은 그런 것이 아니라 믿음의 비밀을 맡은 자라고 분명히 디모데전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가 없는 자가 집사가 되면 무엇합니까? 그는 오히려 복음을 방해하는 자입니다. 교회 나왔다고 몇 년 동안 신앙생활을 했다고 다 믿음이 있습니까? 믿음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자기들의 행위를 보면서 그것이 좋으면 믿음이 좋고 그것이 나쁘면 믿음이 나쁜 것으로 행위를 보면서 판단을합니다.

 

그런 것은 다 외적인 것입니다. 만의 하나라도 그것이 진리로 가는 길을 막아서고 있다면 우리는 배설물처럼 버려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가는 길을 막는 것을 버리지 않고 있다면 아주 작은 것이 그의 영혼을 빼앗아간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본질을 모르면 그런 외적인 것에 마음을 빼앗기게 되어 있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로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단 하나 바로 우리 영혼의 구원을 얻기 위해서 믿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성경을 보고 있는 이유는 그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이며 우리는 이 예수를 성경을 통해 알아감으로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는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율법에 대해서는 아주 연구를 잘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예수에 대해서는 너무 무지에 가깝다고 보아야 합니다. 자기가 교회에 나와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을 그리고 성경말씀을 보는 목적을 잃어버리고 교회에 나와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산을 오르는 사람에게는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그 정상을 정복하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목표를 잃어버리고 밑으로 내려가고 있다면 그는 이상한 사람입니다. 또 가는 길에 너무도 편히 쉴 수 있는 곳을 발견했다고 해서 그곳에서 쉰다면 그는 목적을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그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오직 정상 정복을 위해 때로는 자기에게 꼭 필요한 무거운 장비도 버리고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 장비가 때로는 자기 생명을 빼앗아갈지라도 정상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정상밖에는 아무 것도 안 보입니다. 최소한 식량을 가지고 갈아입을 옷도 최소한으로 가볍게 해서 며칠 동안 양발도 못 갈아 신으면서 또 면도도 못하고 오직 정상을 향해 묵묵히 걸어 올라갑니다. 그들이 사람의 예를 따진다고 매일 옷을 갈아입고 잘 먹으면서 또 면도도 하고 냄새나는 양발을 갈아 신으면서 정상을 정복하려고 한다면 분명히 실패를 하고 말 것입니다.

 

자기 몸에서 냄새가 안 나게 매일 샤워를 하면서 가려고 한다면 실패할 것이 뻔한 일입니다. 그들에게 있어 며칠 신은 양발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또 갈아입지 못하는 옷도 중요하지 않고 목욕을 하지 못해서 자기 몸에서 냄새가 나는 것 역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오직 정상에 올라가는 것이 분명한 목표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어떻습니까? 자기들의 기준에 맞는 옷도 입어야 하고 또 샤워도 매일 해야 하고 면도도 해야 하고 마치 그런 것을 못하면 믿음이 없는 사람으로 치부를 합니다.

 

 그 옷이 십일조가 되고 샤워가 주일이 되고 면도가 그들이 행하고 있고 교회 안에서 어떤 행위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물론 보기에 좋은 떡이 맛있기 마련입니다. 그럴지도 배가 고픈 사람에게는 보기에 좋은 떡 보다는 떡을 먹는 그 자체가 감사할 뿐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부자가 되어서 떡 자체를 먹는 것으로는 부족해서 보기에 좋은 떡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 보기에 좋은 떡을 사도 바울은 배설물처럼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예수를 배설물로 버리고 보기에 좋은 떡을 달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예수를 알면 됩니다. 그 외에 나머지는 다 버려도 됩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면 그렇게 해서 어떻게 천국에 갈 수 있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다 버려도 천국에 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천국에 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마태복음5:19절을 보면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천국에 가는 것이 중요합니까? 아니면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까? 사람들이 정욕에 빠져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려 하다가 오히려 천국에 들어가지도 못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작은 것 다 버려도 됩니다. 저 같으면 천국에서 가장 작은 자가 된다 해도 그편을 택하겠습니다. 버려서 천국을 못 간다는 말씀이 아니라 버리면 천국에서 작은 자라 칭함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 내가 커지려고 하는 그것이 천국에 가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면 어떻게 하시렵니까? 나중에 후회를 해도 그때는 소용이 없습니다. 차라리 안전하게 작은 자가 되는 편이 낫지 않습니까?

 

 예수 이외에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천국에 가서 작은 자가 되는 것이 낫지 큰 자가 되려고 하다가 천국에 아예 가지도 못한다면 그것처럼 불행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그것이 바로 천국을 방해할 수 있는 것이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고 조금이라도 의심이 될 수 있는 것을 차라리 버리시기 바랍니다. 시편84:10절을 보면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성도의 마음입니다. 차라리 문지기면 어떻습니까? 작은 것은 다 버리고 천국에 문지기로 있는 것이 낫지 큰 것을 다 행하려 하다가 아예 천국에 못 들어간다면 그것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의 욕심이 천국에서 큰 자가 되려 하다가 결국 자기 영혼을 사망에 빠뜨리는 어리석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입니다. 그 외에 것은 버릴 수 있다면 다 버리시기 바랍니다. 말로만 예수 하나면 된다고 하지 마시고 실제 신앙생활에 있어서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 가를 스스로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절대로 못 버립니다. 못 버리는 이유는 예수 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예수 보다 보이는 자기들의 행위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을 보고 판단을 하기 때문에 도저히 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영생은 성경에서 예수를 찾아 발견하는 성도의 것입니다 예수 하나를 얻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버릴 수 있는 그 사람에게만 주님의 은혜가 임하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누누이 말씀을 드립니다. 성경을 해석해서 예수가 안 나오면 그는 성경을 잘못 해석한 것이며 그런 말에 빠져 들게 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율법주의 화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보면 당연히 예수만 보여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예수 이외에 것을 더 많이 보고 있습니다. 율법이 무엇입니까? 은사가 무엇입니까? 그것이 나를 구원해 줄 수 있습니까? 나를 구원해 주실 분은 오직 예수뿐이며 내가 성경에서 예수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절대로 영혼 구원을 받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작은 자라도 오직 목표를 천국에 두고 사는 사람만이 그 영혼을 보존할 수 있습니다. 저는 다 버릴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반드시 천국에 가야 하기 때문에 혹시라도 방해가 되는 것이 있다면 다 버릴 수 있습니다. 분명히 믿음으로 하지않는 그것이 주일이라도 또 십일조라도 아니 그 이상 더 중요한 것이 있다 해도 버릴 수 있다면 다 버리고 예수를 얻어서 천국에서 문지기라도 있고 싶습니다.

 

 율법 버려야 됩니다. 그것은 진노의 덩어리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버리지 못하다가 오히려 율법의 진노를 받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율법을 다 지킬 수 있다면 천국에서 큰 자가 될 수 있겠지만 만약 그것을 지키려 하다가 613가지 율법 중에 단 하나라도 범하는 그 순간에는 율법으로부터 진노를 받게 된다는 말씀을 가슴에 깊이 세기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 율법적인 것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그것을 행하면서 자기들은 믿음으로 행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데도 이스라엘이 지키면 율법주의가 되고 자기들이 지키면 하나님을 위해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라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너무도 안타깝기만 합니다. 자기 교회에서는 성경의 모든 것 다 지킨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하는 행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을 거절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그저 자기를 나타내고 싶어서 그런 자기들의 모습에 취해서 또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어 있는 자기들이 뭔가 특별한 것 같아서 진노를 받을 율법을 지키고자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 율법으로 인하여 주님께로 가는 길이 꽉 막혀 있습니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이스라엘이 왜 주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까? 이적과 기사를 베풀고 심지어는 죽은 자를 살리시는 그런 기적을 보고도 예수님을 왜 영접하지 않았습니까? 바로 그들 앞에 가로 막고 있는 거대한 유기체 율법으로 인하여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막고 있습니다. 율법이 주님께로 가는 길을 막아서고 있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그 율법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음행을 하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은 그것이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라고 생각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그저 교회에 나가서 예배를 드리고 어떤 봉사를 하고 하는 그것으로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가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아니 교회에 나온 그 자체로 마치 영생을 얻은 그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는데 굳이 영생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교회에 나가서 사람들이 보기에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자기들의 규례에 따른 행위를 하는 것에 마음을 두고 있지 예수님께로 나아가기를 거절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 시대도 역시 율법과 복음 사이에서 방황을 하면서 예수님께 다 가까이 나아가는 것을 싫어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를 붙잡으려고 하기 보다는 보기 눈에 보이는 그 외적인 것을 놓지 못하고 더 마음을 빼앗겨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성경을 안 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또 성경을 보아도 그 안에서 예수를 찾으려 하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더 큰 자가 될까 고민을 하면서 크게 보이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성경을 보아도 예수는 안 보이고 오히려 은사나 율법이나 또 이상한 것만 보입니다. 성경에 단 한 글자만 있어도 그것을 어떻게 하면 자기 행위로 나타낼까 고민을 하면서 그런 행위를 해서 크게 보이려 합니다. 예수님께 어떻게 나아갑니까? 교회에 가는 것이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까? 그런 것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그 예수를 믿어서 영생을 얻고자 하는 간절한 심령을 가진 성도가 예수님께 나아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성경에서 활자적인 지식을 얻으려 하지 마시고 그 안에서 예수를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성경은 예수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사람에게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율법은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게 합니다.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을 가장 방해를 하고 있는 것이 주변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받으려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보면 참 한심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기가 영광은 다 받으면서 입술로는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린다고 말 합니다. 내가 한 모든 행위는 내가 영광을 받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께 돌리든지 안 돌리든지 내가 영광을 받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외식하는 자들처럼 그저 입술로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린다고 하면서 자기의 믿음을 나타내려고 합니다. 내가 한 행위를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그 자체가 사람에게 영광을 취하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를 건축을 했습니다. 그것을 예배드리면서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린다고 한다고 해서 그것이 주님께서 받으시는 영광이라고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사람으로부터 받는 영광입니다 사람이 한 모든 행위는 사람의 영광이고 주님께서 하신 모든 일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그것을 모르고 그저 입술로 주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한다 해서 그것이 사람의 영광이 아닌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목적이 분명한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허공을 향해 향방 없이 그저 자기 생각에 따라서 칼을 휘두르지 마시고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목적이 없는 사람은 본질 보다는 그 외적인 것에 빠져 자기가 가고자 하는 목적을 잃어버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너무 큰 자가 되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작은 자라도 분명한 목적이 있는 사람은 천국에 어떻게 해서라도 가기 위해서 다른 작은 것들은 다 버리고 오직 예수를 얻기 위해서 성경을 보면서 그 안에서 주님께 나아가기를 애쓰고 있습니다. 그런 성도만이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영접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내 목표는 천국입니다. 그 목표를 위해 가는 성도는 오늘도 성경말씀을 보면서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찾기 위해서 진주를 찾기 위해서 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그런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扈ⓗ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일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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